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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홍콩영화 신드롬과 한류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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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홍콩영화 신드롬과 한류 붐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입력 2017-09-13 03:00수정 2017-09-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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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녀유혼’의 장궈룽(왼쪽)과 왕쭈셴. 동아일보DB
9월 12일은 홍콩 배우 장궈룽(張國榮)의 61번째 생일입니다. 그는 2003년 4월 1일 홍콩 시내 만다린 호텔 24층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사건은 자살로 종결됐습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호텔방에는 매일 향이 피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만우절인 4월 1일이면 수많은 팬이 만다린 호텔을 찾아 거짓말같이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장궈룽은 원래 가수로 데뷔했으나 영화배우로 더 알려졌죠. ‘영웅본색’(1986년) ‘천녀유혼’(1987년) ‘아비정전’(1990년) ‘동사서독’(1994년) ‘해피투게더’(1997년) ‘패왕별희’(2003년)…. 이름만 들어도 올드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유명한 영화들을 히트시킨 주인공이 바로 장궈룽입니다. 이 작품들은 장궈룽을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했습니다.

그가 열연했던 시절만 해도 홍콩 영화가 아시아의 주류였습니다. 아시아 영상 문화의 원류처럼 보였습니다. 명절이면 으레 홍콩 영화 한 편 봐줘야 하고, 연인들은 홍콩 영화를 보며 데이트했으며 그 배우들의 동작과 말을 흉내 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청룽(成龍), 저우싱츠(周星馳), 리롄제(李連杰), 저우룬파(周潤發), 왕쭈셴(王祖賢), 장바이즈(張柏芝) 같은 수많은 스타가 스크린 속에서 세계의 젊은이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장궈룽은 우수(근심과 걱정)에 찬 눈빛과 아름다운 얼굴선, 여린 듯 강렬한 연기로 열성 팬이 가장 많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는 ‘재미없고 뻔한 것’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콘텐츠가 부실했고 제작 여건이 열악했습니다.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해 두려움에 찬 저항이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 개방에는 스크린 쿼터로 보호막을 쳤습니다. 문화 사대주의로 인한 문화 정체성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우(쓸데없는 걱정)였습니다. 우리의 문화 역량에 자신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해운대’ ‘광해, 왕이 된 남자’ ‘도둑들’ ‘명량’ ‘국제시장’ ‘베테랑’ ‘변호인’ ‘암살’ ‘부산행’ ‘택시운전사’ 등 수많은 영화가 관객 10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확보했습니다. 주요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고 수출도 되고 있습니다.

드라마 쪽에선 ‘겨울연가’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본에 한류 붐을 일으켰고, ‘대장금’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파고들었습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외국 채널이 많아졌고 수많은 아이돌 가수의 역동적 댄스와 노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까지 한류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K팝을 따라하는 전 세계의 젊은이가 늘고 있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배용준과 송중기, 김수현과 박보검이 세계의 ‘장궈룽’이 되어 있습니다. 홍콩 영화와 일본 만화가 판치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오래되지 않은 사이 아주 다른 세상이 된 느낌)이죠.

과연 한국 문화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홍콩 영화처럼 한때의 신기루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한류의 내공을 키우고 외연(일정한 개념이 적용되는 범위)을 확장하는 지속적인 노력과 연구, 그리고 정책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홍콩영화 신드롬#한류 붐#홍콩 배우 장궈룽#한국 문화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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