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팔레스타인의 피로 쓴 이스라엘 건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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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비극사/일란 파페 지음·유강은 옮김/568쪽·2만5000원·열린책들

“그자들은 우리를 한 명씩 끌어냈다. 할아버지 한 명이 총을 맞았고, 그 딸이 울부짖자 딸도 총을 맞았다. 그리고는 내 형 무함마드를 불러내서 우리 앞에서 총을 쐈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면서―아직 젖먹이였던 여동생 후드라를 안은 채로―쓰러진 형을 끌어안자 그자들은 어머니한테도 총을 쏘았다.”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인종청소’의 한 장면이 아니다. 1948년 4월 9일 유대 군대가 예루살렘 서쪽 언덕 위에 자리한 데이르야신 마을을 점령하면서 벌인 일이다. 유대 군대는 집집마다 기관총을 난사했고, 마을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학살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기 두 달 전 ‘플랜D’라는 암호명이 붙은 군사명령이 유대 군대에 하달된다. ‘대규모 위협을 가할 것, 마을과 인구 중심지를 포위하고 포격할 것, 주택 재산 물건에 불을 지를 것, 사람들을 추방할 것, 남김없이 파괴할 것,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잔해에 지뢰를 설치할 것….’

팔레스타인 원주민에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를 선택하라는 이 작전은 아주 ‘훌륭하게’ 수행됐다. 그해 가을까지 6개월 동안 학살과 파괴가 지속됐다. 원주민의 절반인 80만 명 가까이가 강제로 추방됐고, 마을 531곳이 파괴됐다.

책은 이스라엘 건국을 지칭하는 아랍어 ‘나크바’(재앙)는 모호한 용어이고, 당시 벌어진 일을 ‘종족청소’로 봐야 한다고 했다. 저자는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이스라엘로 건너온 유대인 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이 비극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이유로 살해 협박을 받았고 1984년부터 교수로 일하던 이스라엘 하이파대에서 2007년 파면됐다. 이후 영국으로 이주해 엑서터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발칸의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마침내 전범재판을 받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종족청소’는 부정되고 잊히기 일쑤다. 이스라엘 교과서는 ‘유대 쪽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냥 남으라고 설득했다’는 거짓 역사를 서술했고 학살과 추방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에서 벗어난 지 3년도 안 돼 이 같은 일을 자행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팔레스타인 비극사#일란 파페#이스라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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