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진실만큼이나 강력한 거짓말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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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는 나무/프랜시스 하딩 지음/박산호 옮김/544쪽·1만5000원·RHK

‘거짓말 나무’에게 햇빛은 치명적이다. 어둠이 드리운 도시의 나무 그림. 동아일보DB
‘거짓말 나무’에게 햇빛은 치명적이다. 어둠이 드리운 도시의 나무 그림. 동아일보DB
간절히 손에 넣고 싶은 비밀이 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는가. 봉인 해제를 위한 제단에 바쳐야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이에 응하겠는가.

이 미스터리 판타지 장편소설은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도사린, 금단의 열매를 따고 싶은 욕구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다윈이 ‘종의기원’(1859년)을 발표한 지 10년 가까이 지난 영국. 열네 살 소녀 페이스는 유명 화석을 발견한 과학자이자 목사인 아버지가 의문에 가득 찬 죽음을 맞자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나선다.

페이스가 맞닥뜨린 건 거짓말 나무였다. 거짓말을 듣고 열매를 맺어 이를 먹은 이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나무. 더 큰 거짓말일수록, 거짓말이 더 널리 퍼질수록 알아낼 수 있는 비밀의 무게도 커진다.

페이스는 나무에게 거짓말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서서히 거짓말의 유혹에 빠져든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퍼뜨리며 쾌감을 느끼게 된 것.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짓을 말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페이스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어서 빨리 다음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빅토리아 시대의 옷차림과 풍속, 거리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진화론과 창조론이 격렬하게 대립하던 당시 분위기도 확인할 수 있다. 남성은 두개골이 여성보다 더 커서 지능이 뛰어나고 여성은 똑똑하거나 숙련된 기술을 가질 수 없다고 굳게 믿던 시절, 페이스가 당차게 나아가는 모습은 소녀들에게 보내는 격려처럼 느껴진다.

거짓말에 대한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와 욕망을 다층적으로 비추는 동시에 읽는 재미도 선사한다. 필립 풀먼의 ‘황금나침반’에 이어 청소년 소설로는 두 번째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코스타상을 수상했다. 탄탄한 서사가 지닌 강력한 힘은 성인을 빨아들이기에도 충분하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 ‘어거스트 러쉬’ 등을 제작한 루이즈 굿실은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원제는 ‘The Lie Tre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거짓말을 먹는 나무#프랜시스 하딩#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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