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쉬멍 걸으멍’ 올레길, 몸과 마음 치유해줬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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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10년을 돌아보니…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 위로… 79세 할머니, 코스 완주하기도
누적 탐방객 726만4000여명
2012년엔 살해 사건으로 뒤숭숭… 행정기관-사단법인 경계 모호
운영-관리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올레꾼들이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제주올레 1코스,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말미오름을 걷고 있다. 2007년 9월부터 제주의 구석구석을 연결한 올레길은 10년만에 도보여행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올레꾼들이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제주올레 1코스,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말미오름을 걷고 있다. 2007년 9월부터 제주의 구석구석을 연결한 올레길은 10년만에 도보여행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007년 9월 8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시흥초등교. 잔디교정에 삼삼오오 모인 여행객들이 발걸음을 옮기며 처음으로 ‘올레길’을 걸었다. 이날은 사단법인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 발족식을 겸해 올레 1코스(시흥초∼광치기해변) 개장식이 열렸다. 말미오름(‘오름’은 작은 화산체를 뜻하는 제주어)을 느릿느릿 오른 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참가자 가운데 올레길이 제주관광의 지형을 바꿀 것이라고 예견한 이가 있었을까.

○ 도보여행의 대명사


10년이 지난 1일 올레 1코스. 무심한 듯 길가에 보라색 꽃을 피운 무릇, 거무튀튀한 현무암 돌담이 꾸불꾸불 이어진 밭, 억새가 무성한 오름, 무리 지어 풀을 뜯는 한우 등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코스 진입로에 여행객 숙소인 펜션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올레길을 알리는 안내소 건물도 번듯하게 들어섰다. 1코스의 바닷가 마을인 구좌읍 종달리에는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생겨났다.

‘집에 이르는 작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어인 올레길은 10년 만에 도보여행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받은 서명숙 이사장 주도로 고향인 제주에 올레길을 만들었다. ‘놀멍 쉬멍 걸으멍’(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을 내걸고 뚜벅뚜벅, 느릿느릿 제주 ‘속살’을 만나는 코스를 지향했다. 옛 길이나 사라진 길을 찾아내고 되살리며 환경 훼손,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했다. 오름, 바다, 마을, 숲 등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길이다.

올레길이 열리자 반응은 활화산처럼 뜨거웠다. ‘도시 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다’라는 소감이 이어지면서 탐방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30∼50대 여성이 중심이었던 ‘올레꾼’은 점차 나이와 직업,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해졌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뒤 항암치료 대신 4대가 함께 완주한 가족, 뇌중풍(뇌졸중) 아버지가 올레길을 걷는 것을 보고 눈물을 쏟아냈던 딸, 79세에 길을 처음 걷기 시작해 코스를 완주한 부산 할머니, 아버지와 길을 걸으며 마음을 연 폭력서클(일진) 아들 등 이야기가 풍성했다.

유명 관광지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 끝나는 제주가 아니었다. 다양한 자연환경과 생태는 매력적이고 마을 안 토박이들과의 만남은 시골 인심 그대로였다. ‘제주의 재발견’이라고 불릴 만했다. 올레길을 걸은 이들이 도시 생활을 접고 아예 제주에 눌러앉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제주 이주 열풍’의 시작이었다. 올레길의 영향으로 강원도 바우길, 대구올레, 인천둘레길 등이 만들어졌고 올레 브랜드는 일본, 몽골 등지로 나갔다.

○ 순탄치만 않았던 올레길


올레길 1코스를 시작으로 매년 1∼5개 코스가 개장했다. 2012년 11월 24일 21코스(구좌읍 해녀박물관∼종달바당)를 끝으로 제주를 구석구석 연결하는 도보여행길이 완성됐다. 정규 21개 코스를 비롯해 부속 섬, 산간 등지 5개 알파코스 등 모두 26개 코스, 425km에 달한다. 지난 10년 동안 누적 탐방객은 726만4000여 명, 한 해 평균 완주자는 600여 명에 이른다.

올레길 역사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길을 걷다가 생기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2012년에는 1코스에서 홀로 걷던 40대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이 발생해 지역사회가 뒤숭숭했다. 올레길에 대한 경찰 순찰이 강화됐지만 안전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올레길 운영과 관리를 놓고 행정기관과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답압에 따른 오름과 식물생태계 등 자연환경 훼손, 탐방객의 특정 코스 집중화, 코스 내 사유지주와의 갈등, 농작물 서리에 따른 주민과 마찰 등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올레길에 따른 소득 창출 효과는 주민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탐방객 인원 등 주먹구구식 통계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서 이사장은 “올레길은 자연, 마을과 함께하는 길”이라며 “지난 10년처럼 앞으로도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길을 다져 나가고 노하우와 가치를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전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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