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北 핵실험 보도 외면하는 中 관영언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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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국제부
구자룡·국제부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 종합채널의 오후 7시 메인뉴스 신원롄보(新聞聯播)는 3일 40분간의 방송 중 북한의 6차 핵실험을 9번째 뉴스로 단신 처리했다. 외교부의 반대 성명을 그대로 읽은 게 전부다. 이 채널이 매일 오전 6시부터 3시간 동안 내보내는 종합뉴스 자오원톈샤(朝聞天下)는 4일 70여 건의 뉴스를 내보냈지만 북핵 뉴스는 빠졌다. 대부분 시간은 3일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 개막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 보도에 할애됐다. ‘아침에 천하(세상)의 뉴스를 듣는다’는 프로그램 제목이 무색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4일자 국제면(18면) 단신으로 북한 6차 핵실험에 관한 외교부 성명을 소개했다. 런민일보의 해외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샤커다오(俠客島)는 3일 오후 5시 48분 ‘조선(북한) 또 핵실험! 중국을 분노하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글을 올린 뒤 곧바로 삭제했다. 중국 보도만 보면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위기감이나 절박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북한 핵실험이라는 사실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관영 매체들은 북한 핵개발 억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 카드로 대북 석유 금수가 다시 등장하는 것을 방어하는 데는 열심이다. 브릭스 정상회의의 잔치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을 막고 ‘중국 정부는 왜 더 강하게 북한을 압박하지 않는가’라는 여론이 조성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3일 영문판 사설에서 “이 시점에서 냉정한 마음으로 중국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며 “동북 지방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방사능 누출로) 환경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한 석유 금수 등 전면적 금수라는 ‘분별없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환추시보 후시진(胡錫進) 총편집은 약 2분 분량의 동영상 평론도 홈페이지에 올려 “미국과 한국이 바라는 석유를 포함한 대북 전면 금수에 나서면 북-중은 적대 관계가 되고, 이는 중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발 더 나아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중국 학자들의 관측도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관영 언론이 국내외 뉴스를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중국 당국의 보도 통제를 보면서 국제사회가 북한 핵 질주를 막기 위해 중국에 걸고 있는 대북 압박 노력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아니,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에도 중국은 대북 압박에서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을 할 것 같지 않다.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 중국을 미국이 압박하고, 양국이 밀고 당기는 그동안의 래퍼토리가 또다시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앞선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북한#핵실험#중국#관영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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