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내 편’ 말고 ‘재판관’을 뽑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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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차장
전성철 사회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8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이유정 변호사를 지명했을 때 법조계의 반응은 “청와대가 대통령 인기를 믿고 너무 밀어붙인다”였다. 이 변호사가 호주제 폐지, 인터넷 실명제 등 다수의 헌법 소송을 대리하면서 법률가로서 의미 있는 경력을 쌓아온 것은 맞다. 헌법재판소에 여성 재판관이 필요한 상황인 점도 누구나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이 변호사가 몸담았던 진보성향 법조인 모임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동료들에게서조차 “이 변호사가 헌재 재판관 ‘급(級)’은 아닌데”라는 말이 나왔다. 법조 경력으로 보나, 헌법재판관 직에 필요한 전문성으로 보나 민변을 포함한 진보성향 법률가 그룹에는 이 변호사보다 더 나은 후보가 많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결국 코스닥 기업과 비상장사 주식 투자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올린 이른바 ‘주식 대박’ 의혹에 휘말려 낙마했다.

청와대는 왜 정치적 ‘아군(我軍)’조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 변호사를 헌법재판관을 시키려고 했을까. 법조계에서는 이 변호사를 남편 사봉관 변호사의 ‘대타’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 변호사는 진보성향 법관 모임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지난해 초 한 대형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2006∼2009년 헌재에서 연구관으로 파견 근무를 한 경력도 있어서 전문성 면에서는 부인 이 변호사보다 헌법재판관 자리에 더 어울린다. 게다가 사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에서 학생운동을 할 때부터 선배인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가깝게 지낸 사이다. 법관 시절에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진보 진영 인사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사 변호사를 낙점하기에는 걸림돌이 많았다. 개업한 지 1년을 갓 넘긴 전관 변호사, 그것도 대형 법무법인 소속인 점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암초가 될 가능성이 컸다. 사 변호사와 같은 법무법인 소속인 검찰 출신 김영문 변호사가 헌법재판관 후보 인선이 한창이던 7월 말 관세청장으로 발탁된 점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

이번 낙마 사태의 원인인 청와대의 부실 인사검증은 법조계의 이 같은 추론을 사실이라고 믿게끔 만들었다. 청와대가 후보자 지명 이전에 이 변호사의 주식 투자 문제를 몰랐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인사검증 책임자인 조 수석과 사 변호사의 개인적 인연을 빼놓고는 민정수석실이 이 변호사의 후보자 지명을 반대하지 않은 이유를 찾기 힘들다.

청와대와 여권으로서는 주식 투자 문제가 불거져도 정면 돌파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언론이나 국회가 이 변호사의 주식 투자 의혹을 파헤치는 건 한계가 있다. 또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자리이니 여론이 나빠도 임명장을 수여하면 그만이다. 잠깐 욕먹을 생각으로 확실하게 밀어주면 6년 재판관 임기 내내 확실한 고정표가 될 수 있다는 계산도 했으리라.

문제는 이런 인사 참사가 앞으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고위직 인사를 할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기준이 ‘내 편’인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최고위직 인선을 하면서 법조인들에게 세평을 들을 때 빼놓지 않는 질문은 ‘그 사람은 진보적이냐’라고 한다. 명색이 재판관을 뽑는 일인데 공정성, 중립성을 갖춘 인물을 찾으려는 시늉조차 않고 누구 편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검증 잣대가 잘못됐으니 사고가 안 터지면 이상한 일이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
#문재인#헌법재판관 후보#이유정#청와대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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