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정훈]김정은이 내밀 ‘북핵 청구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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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미국에선 두 명의 남녀가 돈벼락을 맞았다. 권투 한 경기로 3500억 원을 벌어들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40)와 8000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여성 메이비스 웨인치크(53). 그 두 사람을 보며 코웃음 칠 사람이 있다. 바로 북한 김정은이다. 그는 3일 6차 핵실험을 통해 확보한 수소폭탄 기술로 ‘최고 부자’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계산에 밝다. 그간 ‘공짜 대화’는 한 번도 없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북한은 핵 활동을 중단하는 대가로 국제사회에서 원자로 2기와 연간 50만 t의 중유를 제공받는 빅딜에 성공했다. 2002년 고농축우라늄을 몰래 만들다 들통날 때까지 우리 정부는 원자로 건설비 등 11억3700만 달러를 뜯겼다. 김영삼 정부 이후 지난해까지 103억 달러가 북한으로 흘러갔다. 모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미국도 1992년부터 13억 달러를 털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지난 25년간 북한에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해 왔다”며 대화는 답이 아니라고 했다. 돈만 뜯기는 바보가 안 되겠다는 건데, 그러려면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남한에 사는 자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킬 용기가 없다면 돈으로 핵을 사는 방법뿐이다. 수완이 좋다는 트럼프라지만 참 더러운 선택만 남았다.

북한은 수소핵탄두가 장착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얼마에 팔 수 있을까.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10조 달러를 줘도 핵을 포기 안 한다”고 단언했다. 김정은이 부르는 게 값이 될 거란 이야기다. 이 돈은 북핵이 날아들 수 있는 나라가 분담해야 한다. 미국은 경수로 청산 비용도 우리에게 떠넘겼다. 트럼프라면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최소 수백조 원은 각오해야 한다. 일본도 ‘핵머니’ 공포에 떨게 될 팔자다. 남한은 1964년 한일협정으로 6억 달러(무상 3억 달러, 차관 3억 달러)를 받았지만 북한은 아직 일제강점기에 대한 청구권조차 행사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한국을 바라보는 눈은 차갑게 식어 있다. 워싱턴의 분위기는 6월 한미 정상회담 때와 크게 달라져 있다. 느닷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거론한 것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는 일이 터지자마자 통화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과는 뒤늦게 통화한 것도, 모두 대화에 목매는 우리 정부가 못마땅해서다. “내가 그들한테 말해왔듯 한국은 북한과의 유화적 대화가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 핵실험 당일 트럼프의 이 트윗에는 진한 감정이 묻어났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에 노골적 불만을 표출했다”고 해석했다.

핵실험에도 청와대는 여전히 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공짜 대화는 없다는 걸 이 정부라고 모를 리 없다. 결국 돈으로 핵을 사자는 말인데, ‘북핵 세금’ 청구서는 모두 우리 집으로 날아들 것이다. 무역 10대 강국이라는 입지가 핵무기 앞에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그 청구서를 보면 절감할 것이다. 모두 한미 과거 정부가 북한을 믿고 돈과 시간을 충분히 준 결과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고 전쟁 세력은 아니다. 진보 진영이 손가락질하는 전쟁 세력은 바로 김정은 정권이다. 칼을 든 깡패는 돈과 자신만의 평화를 노린다. 핵은 깡패 정권의 본질이다. 그걸 손에 쥐기 위해 김씨 일가는 64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평화롭게 설득할 수 있다면 그건 깡패가 아니다. 북한에 대한 어설픈 낭만은 우리 주머니를 다 털어갈 수 있다.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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