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 축구’ 골몰, 창은 꺼내지도 못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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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호 이란전 졸전, 무엇이 문제였나
전임 감독보다 수비 한층 강화했으나 김영권+전북 3명, 수비진 소통 애먹어… 실점은 없었지만 상대 공세에 시달려
공격라인도 K리거 대신 해외파 중용… 짧게나마 맞춰온 조직력 무용지물로

질문에 대답할 때를 빼곤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주장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사진)은 지난달 31일 이란과의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차전을 마친 뒤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0-0으로 비긴 뒤 “워낙 관중의 소리가 커서 선수들끼리 소통하기가 힘들었다. 서로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답답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안방 관중을 무시했다고 생각한 축구 팬들의 비난은 엄청났다. 김영권은 1일 오후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당연히 나쁜 뜻으로 한 것은 아니다. 나쁜 의도로 얘기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화가 나신 분들에게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신태용 감독은 “김영권에게 대표팀 데뷔전을 치르는 수비수 김민재(전북)를 잘 잡아주라고 당부했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다 보니 김영권이 잘 들리지 않아 힘들었던 것을 표현하다 뜻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며 김영권을 감쌌다. 김영권이 사과를 했지만 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한 상황이다.

신 감독은 전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에 변화를 줬다. 그 핵심은 수비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체적인 압박을 위해 지금보다 수비라인을 전진시켰다. 결과적으로 수비 뒷공간을 내주기 쉬웠다. 이는 한국 수비 불안의 원인이었고 한국이 8경기에서 10골을 먹는 한 이유가 됐다.

한국 주요 선수의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히트맵(heatmap). 이란과의 1차전에서 보여 주었던 손흥민 이청용의 움직임에 비해 2차전에 나선 손흥민 이재성의 움직임이 전후방에 고루 퍼져 있다. 2차전에서 더 공격과 수비에 고루 가담한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은 1차전 때보다 더 넓게 뛰었으나 공격전술이 부족하고 몸싸움에 뒤지면서 이란을 넘지 못했다. 자료: 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the-afc.com), 신문선축구연구소
한국 주요 선수의 움직임을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히트맵(heatmap). 이란과의 1차전에서 보여 주었던 손흥민 이청용의 움직임에 비해 2차전에 나선 손흥민 이재성의 움직임이 전후방에 고루 퍼져 있다. 2차전에서 더 공격과 수비에 고루 가담한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은 1차전 때보다 더 넓게 뛰었으나 공격전술이 부족하고 몸싸움에 뒤지면서 이란을 넘지 못했다. 자료: 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the-afc.com), 신문선축구연구소
신 감독은 31일 이란과의 2차전에서 이를 개선하는 데 애썼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신 감독이 수비라인을 내려 뒷공간의 공백을 줄이고자 했고 손흥민 등 전방 공격수들까지 수비에 폭넓게 가담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수비에 치중하게 한 것이다. 두꺼운 수비라인의 핵심은 포백 수비였고 김영권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란과의 경기에서 한국의 포백은 김영권을 빼곤 모두 전북 소속의 선수였다. 포백 가운데 유일하게 팀이 다른 김영권으로서는 다른 3명과의 소통이 눈빛과 몸짓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영권은 31일 문제의 발언 직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때는 눈빛만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말을 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이란에 10개의 크로스를 내줬다. 한국이 기록한 크로스 수와 같다. 수비에 치중했으면서도 이란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지는 못한 것이다. 여기엔 분명 수비조직력이 완성되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김영권이 답답함을 토로한 것은 이 부분일 수 있다.

신 감독이 대표 선수들과 훈련한 것은 조기 소집일인 지난달 21일부터 열흘밖에 안 된다. 그나마 유럽과 일본에서 뛰는 선수들은 지난달 28일에야 모일 수 있었다.

신 감독은 수비적으로 경기를 치르면서 공격전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나마 손발을 맞추었던 국내파 선수들을 외면하고 해외파 위주로 진용을 짰다. 이는 신 감독 스스로 짧은 시간이나마 손발을 맞추었던 국내파보다는 해외파의 개인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이었다. 수적으로 앞서고 있으면서도 세부적인 공격전술은 나오지 않았다.

신 감독은 스스로 급조된 대표팀을 이끌면서도 조직력을 조금이라도 강화하는 선택을 저버림으로써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최대한 수비를 두껍게 하면서 지지 않는 경기에 신경 썼지만 공격전술은 준비하지 못한 것이 증명됐다. 최후까지 공격 라인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크게 보면 김영권의 눈물은 신태용호가 갖고 있는 한계가 초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남은 우즈베키스탄전을 무조건 이겨야 한다. 공격전술이 더 필요한 이유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한국 축구대표팀#신태용#김영권#러시아 월드컵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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