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학종’이 진짜 문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현 중3이 대학입시를 치르는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과 관련해 정부가 ‘1년 유예’를 선택했다. 이 결정이 다행스러운 이유는 첫째, 준비 안 된 수능 절대평가가 가져올 엄청난 혼선과 불만을 한시적으로나마 막았다는 점, 둘째는 문재인 정부가 공약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꼴통’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데 있다.

2021 수능 개편 연기 다행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문·이과 구분을 없앤 2015년 교육과정과 맞물려 있다. 가르치는 과목이 달라지니 그와 짝을 이룬 수능 과목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과목이 아니라 평가 방식이다. 일정한 성취 기준만 달성하면 전부 1등급을 주는 절대평가로 바뀐 수능은 시험이라고 할 수가 없다. 이른바 ‘인(In) 서울’ 대학의 입학정원이 7만7900명인데 2016년도 모의고사 기준으로 90점 이상을 맞은 영어 1등급이 13만 명이다. 절대평가로 바뀌면, 저학년 때 내신은 별로지만 뒤늦게 정신 차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의 역전 기회가 박탈되고 내신 및 학교생활기록부 부담이 증가한다. 교내경시대회나 창의적 체험활동 등 비교과 스펙을 위한 사교육은 더욱 극성을 부릴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이다. EBS의 ‘대학입시의 진실’은 학교생활기록부의 두께가 학종의 성패를 좌우하며 학생부가 학교에 의해 얼마나 자의적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줘 충격을 줬다. 성적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넌지시 교내경시대회가 있다는 걸 알려준 학교가 있는가 하면 교사들이 수행평가를 통해 상위권 학생들에게 점수를 몰아준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경기 성남의 한 학교에서 교무부장인 엄마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의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접근해 학생부를 조작했고, 조작된 학생부를 근거로 딸이 성균관대에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엄마는 딸의 봉사 활동, 동아리 활동, 진로 활동에서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과장했는데 경찰에서는 “조작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표현으로 순화했다”고 했다고 한다. 말 몇 마디만 첨언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게 학생부다.

절대평가에 대해 학부모는 물론이고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대가 나온 배경에는 학종에 대한 이런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교육사다리를 복원하겠다고 했지만 학종이야말로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입시제도라는 걸 부인하긴 힘들 것이다.

학종은 입학사정관제의 다른 이름이다. ‘입사’전형은 내신뿐 아니라 특기 적성을 드러낼 수 있는 비교과 활동 등 다양한 전형요소를 반영한 정성평가다. 다시 말해 사람에 의한 선발이다. 점수로 줄 세우지 않겠다는 취지는 그럴듯하지만 한국은 시스템(점수)보다 사람을 믿을 만큼 고신뢰 사회가 아니다.
 
‘금수저 전형’ 벗어나야
 
김 부총리는 “짧은 기간 국민적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수능을 포함한 입시제도, 고교학점제, 내신 성취평가제 등 새 정부의 교육철학을 반영한 교육개혁 방안을 다시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년 유예는 2022년 전 과목 절대평가를 위한 2보 후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절대평가든 9등급제든 중요한 건 지금과 같은 학종을 가져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ebs 대학입시의 진실#입학사정관제#금수저 전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