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경임]“비정규직 문제, 왜 교사끼리 싸워야 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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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정책사회부
우경임·정책사회부
7월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교단에서는 ‘일자리 전쟁’이 벌어졌다. 기간제 교사와 정규직 교사, 임용고시생 사이의 인신공격성 비난 댓글은 아이들이 볼까 민망할 정도다. 지금까지 교육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 논의를 지켜보면 교육 분야 비정규직 5만5000여 명 중 정규직이 되는 인원은 아주 소수일 것 같다.

취재 과정에서 A교대 교수는 “비정규직 제로(0)가 정말 가능한가. 서로 속이고 있는 게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교육 현장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근본 원인을 따져 보지 않고 정규직화를 밀어붙인다면 어디선가 또다시 비정규직은 생겨난다.

B학교는 지난해 베트남어를 쓰는 다문화가정 학생이 다수 입학하자 베트남어 강사를 채용했다. 그랬더니 올해는 인도네시아어를 쓰는 학생만 입학했다. 다문화언어 강사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다면 이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자발적인 비정규직도 있다. 자녀가 어린 여성들은 파트타임 강사 자리를 선호할 수 있다.

교사 정원을 늘려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교사를 해고할 수도 없는 학교는 기간제 교사 제도를 악용한다. 기간제 교사를 편법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 교사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많은 업무를 준다. 지금까지 이런 편법과 불법을 외면한 정부가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새로운 ‘룰’을 불쑥 내미니 교육 현장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너나없이 “정규직으로 해 달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특히 교사는 ‘철밥통’에 비유될 만큼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A교대 교수는 “진지한 성찰 없이 정규직화를 추진한다면 사회적 갈등만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꺼번에 정규직화가 이뤄지면 노동시장은 경직되고, 미래세대의 진입 장벽은 더욱 높아지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기간제 교사는 출산·육아 휴직대체 등 본래 목적 외에 편법 및 불법 채용을 근절해 정규직 교사로 가는 길을 대폭 넓혀야 한다. 동일한 노동을 한다면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비정규직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

대통령의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에는 정규직 현황이 표시된다. 압박이 큰 각 부처는 정교한 정책 설계 없이 숫자 올리기 경쟁을 벌이는 건 아닐까. 정규직화가 ‘절대선’이라는 확신을 버려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면 비정규직이 필요한 부분이 보인다. 그래야 2중, 3중 진입 장벽을 만들지 않게 된다. 그래야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우경임·정책사회부 woohaha@donga.com
#교사#비정규직#기간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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