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진짜 가족 아침 챙기려 황족 가족과 잠시 이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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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대행진’ 19년 만에 하차 황정민

1998년부터 19년 동안 KBS 쿨FM ‘황정민의 FM대행진’을 진행해온 황정민 아나운서. 황 아나운서는 3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998년부터 19년 동안 KBS 쿨FM ‘황정민의 FM대행진’을 진행해온 황정민 아나운서. 황 아나운서는 3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간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여행사 직원일 때 듣기 시작했는데 이젠 제가 대표가 되었네요’ ‘초등학생 때 엄마 차에서 방송을 들었는데 어느덧 제가 서른이에요’….

요즘 KBS 쿨FM ‘황정민의 FM대행진’에는 스스로가 오랜 팬이었음을 뒤늦게 고백하는 사연들이 쏟아진다. 진행자인 황정민 아나운서(45)는 “있을 때 잘하지!”라며 새침하게 대답하고는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지난 일주일은 그와 이 프로그램 애청자들인 ‘황족’이 작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19년 만에 마이크를 내려놓는 황 아나운서를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1998년 10월 12일부터 지켜온 자리를 떠나는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마지막 일주일간의 방송을 울지 않고 끝내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요즘 늘 긴장상태다. “막상 그만둔다고 하니 내가 잘한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밥이 잘 안 넘어가 3kg이 빠졌어요. ‘가을에는 이별하면 안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요.”


황 아나운서는 오랜 시간 라디오를 진행하며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는 가수들은 하루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잖아요. 그 대신 저는 매일 아침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새로운 가족을 얻었어요. 가까운 사이에 할 수 없는 얘기들을 사연으로는 보낼 수 있거든요. 그럼 전 늘 같은 편이 되어주려고 노력했죠.”

그가 이 프로그램을 떠나는 이유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2005년 결혼한 그에겐 10세 아들, 8세 딸이 있다. “올해 초 발가락이 부러져 FM대행진만 진행하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 있었는데 아이들이 무척 안정되더군요. 계속 ‘엄마, 어디 안 갈 거지?’라고 물어보는 모습을 보니, 아무것도 안 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그는 가족 대신 수많은 청취자들의 아침 출근길을 책임져왔다. 이른 아침 방송을 위해 오전 4시부터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황 아나운서는 “갓 태어났을 때를 빼면 우리 아이들은 한 번도 아침에 엄마와 같이 있어 본 적이 없다”며 “남편이 하루는 ‘너는 모르겠지만 아침마다 학교 보내는 게 전쟁이야’라고 말해 미안했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 FM대행진은 3일 방송된다. 황족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웃음을 터뜨렸다. “멋진 말을 하고 싶은데 생각이 안 나요”라며.

“우리 황족들도 저처럼 수줍음이 많아요. 다른 얘기를 하다 헤어지기 직전에 ‘사실 저 황족이에요’라고 털어놓는 식이에요. 그래서 쑥스러우면 말없이 100원짜리를 건네기로 했는데, 수영장에서 만난 황족이 ‘제가 지금 수영복을 입고 있어서 100원짜리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잔잔하게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fm대행진#황정민 아나운서 하차#황정민의 fm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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