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협치는 맨입으로 되는 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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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 여야 대표 회동에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선거 전 일은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큰 강을 지났으니 뗏목은 이제 잊어버리자”고 당부했다.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면서 협치(協治)를 제안하며 건넨 말이다. 하지만 취임 100일이 지나도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들과 따로 만나 진솔하게 대화를 나눴다는 얘기는 없다. 당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공공기관부터 낙하산 인사, 캠프 보은 인사를 안 하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지만 언제부턴가 인사 발표만 하면 ‘캠프 낙하산’ 꼬리표가 붙는다. 대통령은 도강(渡江) 후에도 무거운 짐에 뗏목까지 지고 가는 모습이다. 탈(脫)원전 정책이나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부자 증세, 적폐 청산 등 대선 공약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챙겼다.


노무현 실패는 토론 때문?

대통령 업무지시 1호 일자리위원회 설치부터 6호인 4대강 보(洑) 상시 개방에 이르기까지 취임 100일은 숨 가쁜 대통령 지시의 연속이었다.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에 힘 받은 대통령의 독주에 야당은 보이지도 않았다. 문 대통령의 속도전은 토론을 중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됐다고 청와대 사람들은 말한다. 숱한 위원회를 만들어 격렬하게 토론했지만 논란만 증폭시키며 반대편 공격을 불러왔을 뿐 정작 성사된 것은 많지 않은 노무현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토론과 민주적 절차를 중시했던 노무현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문재인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원전 문제가 국회로 가면 정쟁만 요란할 것”이라는 전병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말에도 문 대통령의 속내가 엿보인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 사석에서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이라도 나라 전체 일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몫은 30%밖에 안 된다”고 했다. 나머지는 입법 사법 행정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다가 사달이 난 것이 전임 정권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야가 부딪힐 때마다 한밤중에도 전화통을 놓지 않고 의회 지도부를 설득했고 여야를 떠나 의원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

2004년 9월 노 대통령 임기 이듬해 정기국회 때 4대 쟁점법안을 놓고 여야는 극한 대치를 벌였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취임 1년을 맞는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못하는 일은 임기 중에 물 건너갈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생각할 만하다. 과거사와 친일 진상규명, 사립학교개혁 법안은 통과시켰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더욱이 과거 청산에 매달리느라 정작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는 내팽개쳤다는 후폭풍이 거세면서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대선후보들 손 맞잡아야

내일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는 문 대통령에겐 새로운 시험대다.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려면 국회에서 647건의 법률 제정 및 개정이 필요하다. 반대 세력까지도 끌어안는 포용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무엇 하나 이루기가 쉽지 않다. 법인세 인상과 선심성 복지정책을 담은 내년도 세제개편안과 예산안, 의료보장을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 심지어 적폐 청산도 야당 협조 없이는 어렵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한 유인태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이 지지율만 믿고 밀어붙이려다가는 장벽에 부딪힐 것”이라며 “막후에서도 야당을 설득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지난 대선에서 경쟁한 야당 정치인들부터 만나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당을 떠나 도와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하면 어떨까. 협치는 맨입으로 되는 게 아니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문재인 대통령#박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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