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잊었나” 옐런 의장, 트럼프의 급진적인 규제완화 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7일 14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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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로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이미 잊은 사람들이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급진적인 금융 규제 완화에 반기를 들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연준 의장이 정부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옐런 의장은 25일(현지 시간) 와이오밍 주 잭슨홀 심포지엄 연설에서 “몇몇 사람들이 금융위기의 기억을 잊고 있다”며 “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으며, 왜 그런 조치를 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추진한 핵심 개혁이 신용 여력이나 경제 성장을 제한하지 않고 경제를 회복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규제 틀에 대한 조정은 관련 은행과 대형 딜러들의 회복력을 유지하는 선에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지나친 금융규제가 경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금융감독 강화법안인 도드-프랭크법 규제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도드 프랭크법 규제 때문에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는 바람에 친구들이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옐런 의장의 이날 발언은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급격한 금융 규제 완화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옐런 의장은 “은행의 자본 투자를 제한하는 ‘볼커 룰’과 중소은행에 대한 규제는 시장 유동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며 점진적 규제 완화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스탠피 피셔 연준 부의장도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흐르자 모든 사람들이 금융위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며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단견”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뉴욕타임즈(NYT)는 연준 고위 간부의 잇단 정부 비판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엔 정부 규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거의 없는 옐런 의장이 급격한 변화를 막기 위해 점점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옐런 의장이 공개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를 비판하면서,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그의 연임 가능성도 멀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의 시장 전망 서베이에 따르면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옐런 의장보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콘 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개혁의 설계자로 꼽히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연준 의장 후보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 밖에 케빈 워쉬 전 연준 이사, 글렌 허바드 컬럼비아대 교수,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 등도 후보로 거론된다.

한편, 옐런 의장은 이날 내놓은 19쪽 분량의 연설문에서 금융시장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시장은 급격한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온건한 신호로 받아들였다. 노무라증권은 “시장에서는 최근 위험자산 가치의 상승이 금융안정성 유지에 별다른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평가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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