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박근혜 前대통령의 적극적 지원 요구에… 이재용, 수동적으로 뇌물공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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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1심 5년 선고]1심 재판부 어떤 판단 내렸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 1심 선고에서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에게 ‘수동적 뇌물’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의 도움을 받기 위한 ‘명시적 청탁’을 하지 않았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위한 묵시적, 간접적 청탁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 부회장 등 삼성 측이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딸 정유라 씨(21) 승마 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한 게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구체적 청탁 한 적 없다”

재판부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75)에서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추진됐다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의 보고를 받고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승계 문제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과 2015년 7월, 2016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할 때 경영권 승계에 대해 구체적인 청탁을 한 적이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이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나 개별 현안에 대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 명시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박 전 대통령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을 공여했다”고 밝혔다.

○ “대통령이 관심 가져 어쩔 수 없이 출연”

또 재판부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여 원을 출연한 것은 아예 뇌물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재단 출연을 한 것이라고 봤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가 삼성의 주요 현안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삼성에 대한 재단 출연 요구와 경영권 승계 문제를 연계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 해결에 대한 대가 관계라는 인식을 하고 (삼성에) 출연 요청을 했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기업들의 재단 출연이 박 전 대통령의 관심 사항이었기 때문에 삼성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책정한 출연금을 어쩔 수 없이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 “뇌물 주범은 박근혜 최순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뇌물 범죄의 주된 책임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에게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와 공모해 세 차례의 단독 면담을 통해 이 부회장에게 적극적으로 지원 요구를 했고 이 부회장은 승계 작업에 관한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다른 피고인들(삼성 임원들)에게 승마 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최 씨 모녀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삼성 측은 “지난해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뒤 알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은 2014년 12월경 박 전 대통령의 승마 지원 요구가 ‘정유라 지원’인 점을 알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 재판부 “이재용 포괄 지시” vs 최지성 장충기 “우리가 주도”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정 씨 승마 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위한 포괄적인 지시를 내리고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66)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63)이 이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 15일 박 전 대통령과의 1차 독대 이후 장 전 차장 등에게 박 전 대통령의 요구를 전달하면서 승마 지원에 대한 포괄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사실상 총수로서 승마와 영재센터 지원 등을 지시하고 범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또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이 이 부회장과 긴밀하게 의사 연락을 하며 각 범행이 실현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범행에 대한 가담 정도가 상당히 무겁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최 전 실장 등에게서 보고를 받고 ‘큰 그림’을 그리는 차원의 지시를 했으며 구체적인 계획 수립과 실행은 최 전 실장 등이 했다는 의미다.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은 2일 공판 피고인 신문에서 승마 지원을 자신들이 주도했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승마 지원이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지시한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재판부는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에게 이 부회장의 형량(5년)과 비슷한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이들을 법정 구속했다.

○ 안종범 수첩 주요 증거 채택 안돼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의 양형 감경 판단에 △수동적인 뇌물 제공 경위 △부정한 청탁을 통해 부당하게 얻은 성과가 확인되지 않은 점 △승계 작업 일환인 삼성 지배구조 개편이 그룹과 계열사 이익에도 기여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58·구속 기소)의 업무수첩 63권과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면담을 준비하며 작성한 ‘대통령 말씀자료’는 중요한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권오혁 hyuk@donga.com·전주영 기자
#박근혜#이재용#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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