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30장 분량 ‘손바닥 소설집’… “내용은 묵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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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명 작품 모은 ‘이해 없이 당분간’
한국 사회문제 키워드별로 풀어… “이시대의 기록같은 책으로 봐달라”

초단편 소설집 ‘이해 없이 당분간’을 든 조해진, 손보미, 백민석 작가(왼쪽부터)는 “문학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지, 스스로도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계속 질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초단편 소설집 ‘이해 없이 당분간’을 든 조해진, 손보미, 백민석 작가(왼쪽부터)는 “문학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을지, 스스로도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계속 질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소설가 22명이 참여한 손바닥 크기의 초단편 소설집 ‘이해 없이 당분간’(걷는사람)이 최근 출간됐다. 우리 사회를 다채롭게 조명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작품별 분량은 원고지 30장가량. 집필 시기는 지난해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였다. 이 손바닥 소설을 쓰는 데 참여한 백민석(46) 조해진(41) 손보미 소설가(37)를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초록 빛깔 표지의 책을 만지던 백 작가는 “한 시대의 기록 같은 책”이라며 입을 뗐다. 그는 작품 ‘눈과 귀’를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마님이란 존재를 비판한다. ‘빛의 온도’(조해진)는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의 심리, ‘계시’(손보미)는 지진이라는 재난에 처한 사람의 심리를 묘사했다. 이들은 작품별로 제각각의 결을 지닌 게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집필 과정에서의 느낌도 달랐다. 조 작가는 “출판사에서 촛불, 광화문 등 여러 키워드를 제시했다. 교훈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으면서도 문학적인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반면 손 작가는 “사회 문제를 직접 글에 녹이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작업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점점 책을 멀리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소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본질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게 소설의 역할이 아닐까요?”(조해진)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손보미)

소설가는 사회와 교감하며 이를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존재이기에 자연스럽게 시대를 반영하게 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이 죽는 설정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진정한 애도란 무엇일지 생각했고요. 여성 혐오 논란이 일면서 글에서 여성, 더 나아가 인간을 대상화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되묻고 있어요.”(조해진) “시대정신은 의식하지 않아도 글 속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존재의 얼룩처럼요.”(백민석)

글만 써서 생계를 꾸려 나가는 건 대다수 작가들에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조 작가와 손 작가는 강의를 하고, 백 작가는 여행 에세이 등으로 장르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글을 쓸 때가 가장 재미있다. 살아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는 순간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10년간 절필했던 백 작가는 “처음에는 살 것 같고 진짜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글이 그리워졌다. 돌아오길 잘한 것 같다”며 웃었다.

글이 잘 안 풀릴 때는 독자로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단다.

“내게 의미를 주는 문장을 발견하고, 어떤 곳에서 특정 작품을 떠올릴 때가 있어요. 누군가에게 그런 순간을 선사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벅찰 것 같아요.”(조해진)

백 작가와 손 작가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깊숙이 끄덕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초단편 소설#이해 없이 당분간#백민석#손보미#조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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