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택 늘리고 재정확충” vs “건설사 밥그릇까지 빼앗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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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유지 직접 개발]

부산 강서구 낙동북로에 위치한 옛 시설원예시험장 터. 농촌진흥청 국유지로 2014년까지 쓰이다가 시험장 이전 이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부산사무소가 쓰는 일부 건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방치돼 왔다. 약 16만 ㎡ 크기로 축구장 23개 넓이다. 농촌진흥청 제공
부산 강서구 낙동북로에 위치한 옛 시설원예시험장 터. 농촌진흥청 국유지로 2014년까지 쓰이다가 시험장 이전 이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부산사무소가 쓰는 일부 건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방치돼 왔다. 약 16만 ㎡ 크기로 축구장 23개 넓이다. 농촌진흥청 제공

정부가 1만 m² 이상 대규모 국유지 개발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나대지 등으로 방치된 국유지에 공공임대주택 2만 채, 국공립 어린이집 100곳 등을 짓고 개발에 따른 세외수입도 거두겠다는 취지에서다. 첫 시범 사업지로는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인근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부산사무소 자리(옛 시설원예시험장)가 유력하다.

정부는 24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새 정부 국유재산 정책방향’을 확정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정부는 국유지에 건물만 세울 수 있게 규정한 국유재산법을 개정해 정부가 직접 토지 구획정리, 진입로 확보 등 택지개발 수준의 토지개발에 나설 방침이다.

○ 방치된 국유지에 미니 신도시 조성

정부의 이번 정책은 사실상 방치됐던 정부 소유 토지의 가치를 높이면서 동시에 부족한 공공임대주택 용지 등 정부의 각종 국책사업용 토지를 확보하겠다는 ‘다목적 카드’로 풀이된다.

정부는 우선 1만 m² 이상의 국유지 개발을 직접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개발 가능한 국유지는 전체 국유지 2만4940km² 가운데 일반재산으로 분류되는 토지 831km²의 18.3%에 달하는 152km²다. 서울시 면적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에서도 도심지역에 위치한 교정시설이나 군시설, 대규모 청사 이전용지가 우선 개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재부 관계자는 “도심이 커지면서 외곽에 있던 이들 시설이 도심 안으로 들어온 경우가 적지 않다”며 “그동안 헐값에 넘기던 땅을 정부가 공공 목적으로 개발하면 사회적 이익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개발될 1호 사업지로는 부산 강서구의 옛 시설원예시험장 용지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원예시험장이 2014년 경남 함안군으로 이전하면서 16만4320m²에 이르는 토지 가운데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쓰는 일부 시설을 제외하면 방치 상태로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산 도심과 멀지 않고 경전철, 고속도로 등과 인접해 공공개발 적합지로 판단했다”며 시범사업으로 적극 검토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 국유지 활용해 신재생에너지 확충도

이런 지역들에는 우선 행복주택, 청년임대주택 등의 공공목적 주택이 포함된 ‘미니 신도시’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부는 청년·신혼부부용 공공임대주택 2만 채를 지을 계획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임대주택 17만 채 건설’ 공약의 진행 속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4년 택지개발촉진법 폐지 후 도심 내 신규 택지 공급이 끊겨 그동안 임대주택 용지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정부는 택지 이외에도 국유지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 기관이 사용하는 청사를 지을 때 공공임대주택이나 국공립어린이집 등을 함께 짓는 게 대표적이다. 지금까지는 매점 등 수익시설만 설립할 수 있다.

알짜 국유지를 민간 등에 무분별하게 매각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원칙적으로 국유지 매각을 막고, 설령 매각할 경우에도 수의계약 대신 경쟁입찰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지난해 매각한 국유지 가운데 수의계약한 비율은 87.3%에 이른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활성화에도 국유지가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목적으로 국유지를 빌릴 경우 임대료에 해당하는 대부요율을 낮춰줄 예정이다. 탈(脫)원전 정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다. 정부가 개발한 국유지 공간의 일정 부분은 창업기업에 빌려 준다.

○ “개발까지 정부가 하나” 민간업계 불만

민간에서는 이처럼 정부가 국유지 직접 개발에 나서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번 조치가 활성화된다면 토지주택공사(LH), 지방자치단체, 민간 건설업계 등이 쥐고 있던 도시개발 주도권이 정부 중앙부처로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땅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LH,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위탁개발을 맡길 계획이다. 지금도 캠코가 일부 정부 소유 건축물에 대해 사업비의 4% 안팎 수수료를 받고 제한적으로 위탁개발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런 방식이 국유지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개발업계 등에서는 국가가 도심 노른자위 땅의 개발권을 독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건설업계에서 알짜 사업으로 통하는 국유지 주택분양 사업이 사라져 민간 부동산 개발업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행사 대표는 “정부가 연 17만 채 공공주택 공급을 공약한 상황이라 정부 주도로 개발이 이뤄질 경우 임대주택 일변도로 될까봐 우려스럽다”고 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도심의 좋은 입지에 직주(職住)근접형 복지시설을 공급할 좋은 방안”이라면서도 “민간제안을 완전히 배제하고 정부 주도로만 추진할 경우 오피스텔, 업무·생산시설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갈 만한 공간에 임대주택 일변도의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김준일 /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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