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떨어지면, 오감이 떠오른다… 여수밤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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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전문기자의 코리안 지오그래픽]‘아름다운 물’ 여수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버스커버스커의 이 노랫말처럼 이 소호동동다리를 걷노라니 그 불빛에서 파랗고 하얀 이야기가 돋아난다. 이 나무다리는 소호요트마리나까지 무려 700m나 이어진다. 여수(전남)에서 summer@donga.com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버스커버스커의 이 노랫말처럼 이 소호동동다리를 걷노라니 그 불빛에서 파랗고 하얀 이야기가 돋아난다. 이 나무다리는 소호요트마리나까지 무려 700m나 이어진다. 여수(전남)에서 summer@donga.com

2012 여수세계박람회(EXPO) 개장을 며칠 앞두고서다. 여수시내에서 눈이 확 뜨였다. 너무도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비된 도심과 주택가를 보고서다.

이전과 차이는 너무도 컸다. 그 한 해 전만 해도 우중충한 항구의 구태가 일상이었다. 그게 이렇듯 상큼하게 변했으니…. 생경함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때 각인된 상쾌한 도시 분위기가 더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져서다. 도시란 게 시간이 지나면 낡고 닳아 신선함을 잃게 마련인데 여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 배경, 여수세계박람회다.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지구촌 규모의 국제행사에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이유. 그걸 통해 얻을 빛나는 유산(Legacy)이 기대되어서다. 그건 미래의 발전 동력이다. 그런 면에서 여수세계박람회는 성공작이다. 여수를 이토록 멋지게 변모시킨 유산-시민의 자긍심과 자신감-이 배경이자 원동력이다. 이런 여수를 노래 한 곡이 크게 띄웠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노래 역시 박람회 유산이다. 그게 여수에서 열리지 않았다면 그 노래 역시 없었다. 작곡자(장범준)가 당시 박람회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게 인연의 꼬리여서다.

이렇듯 그 유산은 도처에 남아 있다. 성공한 박람회였기에 여수도 이렇듯 멋지게 변모했고 그걸 통해 다른 도시도 자극을 받으니 온 나라에 여수엑스포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 주었다 하겠다.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이 노래. 그건 일종의 ‘마력’이다. 그 멜로디에 끌려 수많은 젊은이가 여수밤바다를 끊임없이 찾아와서다. 그런 여수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 시내 해양공원의 빛 광장이다. 거긴 노래 속의 여수밤바다 무대다. 그래서 줄지은 ‘낭만포차’(포장마차 17개로 구성)는 늘 붐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과 음식을 먹으며 노래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이순신광장 등 시내곳곳에선 통기타반주의 노랫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이 노래가 불러들인 버스커(거리음악가) 공연이다. 덕분에 여수는 이미 버스커 성지가 됐다. 그게 여수낭만버스(시티투어)에 ‘시간을 달리는 버스커’버스를 탄생시켰다.

가막만을 가로질러 돌산대교와 뭍을 오가는 해상케이블카. 저 다리는 거북선대교고 건너편 케이블카주탑 아래 풍차가 있는 곳이 하멜기념관이다. 멀리 등대가 선 곳은 오동도.
가막만을 가로질러 돌산대교와 뭍을 오가는 해상케이블카. 저 다리는 거북선대교고 건너편 케이블카주탑 아래 풍차가 있는 곳이 하멜기념관이다. 멀리 등대가 선 곳은 오동도.
여수는 갯가임에도 갯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특별한 항구도시다. ‘수려한 물’이란 그 이름 덕일까. 그런 여수에선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방이 바다여서다. 서해안 동해안에선 바다가 방향의 척도다. 왼쪽에 보일 경우 정면은 북쪽 아니면 남쪽이다. 그런 게 여수에선 안 통한다. 제각각 이름의 바다(여수만 가막만 여자만 광양만)에 포위 당해서다. 그중에도 가막만은 육지와 섬에 에워싸인 호수 형국이다. 그 섬과 육지는 대교 6개로 이어진다. 그 길로 여수를 주유하다보면 누구든 알게 된다. 여수가 미항임을. 돌산과 자산 두 공원을 오가는 해상케이블카를 타지 않고도 말이다.

돌산도의 해안절벽에 들어선 관음도량 향일암.
돌산도의 해안절벽에 들어선 관음도량 향일암.
이런 미항 여수를 찾은 이는 지난해 무려 1300만 명. 29만 명 도시에 그런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온다니 놀라울 뿐이다. 고급숙소(1560실)의 객실점유율이 주말 80%, 연평균 66.7%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밤을 팔아야 성공한다’는 관광산업의 정수를 여수는 확실히 보여준다. 올해는 1400만 명을 넘본다는데 관음도량 중에도 기도효험이 특히 높다고 소문난 향일암(向日菴)이 돌산읍에 있는 만큼 그 염원 달성엔 무리가 없을 듯하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어디든, 또 그가 누구든 대차 없다. 제 고향 사랑과 자랑엔 끝이 없음이. 그런데 유독 여긴 그 어디보다 더하다. 먹을 거면 먹을 것, 볼 거면 볼 것, 역사는 물론이고 지리 지형 문화에 음악까지도…. ‘아름다운 물(麗水)’이란 지명부터가 그렇다. 한려해상국립공원(오동도)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금오도)이 두루 한바다로 어울리는 데가 여수다. 예서 반드시 짚고 가야할 인물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과 417년간 조선바다 지킴이 역할을 해온 전라좌수영이다.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가 함락되자 충무공은 어머니를 이 여수로 모셨다. 그래서 여수는 충에 이어 효의 고장으로도 부각됐다. 거북선 세 척이 지어진 곳도, 충무공이 숨을 거둔 곳도 여기 여수다. 거북선을 보자. 여수였기에 발명됐다고 본다. 마침 구봉산(봉산동)에 사철소가 있어 쇠를 제련할 수 있었고 돌산엔 이봉수라는 이가 화약제조기술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흥국사 스님들은 화포와 철갑 제조에 필요했던 놋쇠 등 쇠붙이를 신자의 보시로 제공해주었다. 조선수군의 승전 배경도 그렇다. 충무공의 전술전략도 날씨 지형 물때 물길을 꿰뚫던 여수출신 수병의 헌신이 있었기에 빛을 보았다. 그런 여수에서 충무공 같은 지략가가 준비된 수군을 지휘했으니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승리가 이 바다에서 기록된 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한편 여수는 먹을거리로 쳐도 남도 어디 못잖게 다양하고 이름난 갯가다. 여수의 간판음식인 간장게장은 국동항 선술집에서 태어났다. 선원에게 공짜로 주던 밑반찬이다. 그게 봉산동에서 게장백반으로 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청정바다의 굴도 진미 중 하나다. 가막만이 거긴데 그 바다엔 ‘굴밭(田)’이란 곳까지 있다. 향일암으로 이어지는 돌산로의 우두리에 있는 안굴전(田)이 거기다. 굴 양식단지인 이 마을에 가면 굴 요리를 코스(구이 전 죽 샤부샤부 등등)로 내는 식당이 즐비하다. 돌산갓으로 담근 갓김치는 여수와 동일시되는 향토음식. 향일암 아랫마을에 파는 곳이 줄지어 있다.

막걸리식초에 고추장을 버무려 무쳐내는 서대회, 그걸 안주삼아 들이켜는 거문도 쑥막걸리, 헛헛한 속을 채우기에 그만인 뽀얗게 우려낸 통장어탕…. 모두 여수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입의 호사다. 제 서방은 안 주고 샛서방에게만 준다고 할 만큼 맛있는 생선 금풍쉥이구이 역시 메이드 인 여수다. 뼈가 억센 이 물고기의 본래 이름은 ‘군평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충무공이 밥상에 오른 생선구이를 먹고 이름을 물었지만 아무도 대질 못했다. 그런데 마침 관기 구평선이 시중을 들고 있어 장군은 관기 중에 네가 가장 예쁘니 이걸 ‘평선이’라 부르자고 했단다. 그걸 구운 게 군평선이고 어찌어찌하여 금풍쉥이가 됐다. 믿거나 말거나.

참장어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야채쌈을 해 먹는다.
참장어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야채쌈을 해 먹는다.
하지만 삼복더위에 참장어(일본어 하모) 만큼 입맛을 다시게 하는 건 이 먹자천국 여수에도 따로 없다. 어른 집게손가락만큼 길쭉하게 썬 두툼한 장어를 냄비에서 펄펄 끓는 물에 딱 3초만 담가 살짝 익힌 뒤 간장에 찍어 야채에 쌈해 먹는 이 요리. 일본인이 보면 뒤로 자빠질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왜냐면 일본의 하모(참장어) 요리는 여수 것의 절반 크기로 한 토막이나 기껏해야 두 토막이 고작이어서다. 여수에선 그걸 1인당 열 점 이상 먹어댄다. 참장어의 주산지는 여수항 전방의 경도로 주낙으로 잡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잡는 대로 일본에 수출해 여수사람조차 맛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 생선이다.

여수(전남)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손수운전:
서울 351km, 부산 239km, 대구 221km. ◇대중교통 ▽철도: 고속철도로 서울∼여수엑스포역 3시간 10분 소요 ▽고속버스: 서울 출발 △우등 3만800원 △일반 2만700원. 여수종합터미널 1666-6977

여수낭만버스: 출발은 여수엑스포역 ▽2층 버스(72석) △주간(하루 7회): 원하는 만큼 타고 내리는 도심순환형. 오전 10시 반∼오후 5시 반 매시 정각(오후 1시 반 제외)운행. 아쿠아플라넷∼케이블카주차타워∼오동도∼엠블호텔∼하멜전시관∼이순신광장∼여객선터미널∼돌산공원입구∼여수엑스포역. 첫째·셋째 월요일 쉼. 5000원 ▽야간(1회): 오후 7시 반∼오후 10시. 코스는 돌산공원∼예울마루∼소호요트마리나∼여문문화거리∼이순신광장. 1만 원 ◇관광버스(9000원): 여수엑스포역 출발 ▽매일(1회) △제1코스(향일암): 오전 10시 반∼오후 5시 20분(둘째 주 월요일 쉼) 오동도 향일암. △제2코스: 오전 9시 반∼오후 5시(토·넷째 월요일 쉼) 향일암, 이순신장군 유적 △야경코스: 오후 7시 반∼오후 9시 40분. 국가산업단지∼오동도 음악분수∼돌산공원∼여수엑스포역 ▽토요일만(1회) △토요역사유적코스: 오전 9시 반∼오후 4시 45분. 진남관, 전라좌수영 거북선, 선소, 흥국사(입장료 2000원). ◇문의 및 예약 △(유)동서관광 061-692-0900, 0903 △여수OK통합예약(온라인): 탑승 30일 전부터 가능. 여수관광문화 홈페이지(http://tour.yeosu.go.kr)

여수를 찾으면 누구나 한 번쯤 타게 될 낭만버스. 여기는 소호요트마리나로 밤이면 푸른 조명으로 빛나는 동동다리가 오른편에 보인다. 여수(전남)에서 summer@donga.com
여수를 찾으면 누구나 한 번쯤 타게 될 낭만버스. 여기는 소호요트마리나로 밤이면 푸른 조명으로 빛나는 동동다리가 오른편에 보인다. 여수(전남)에서 summer@donga.com

시간을 달리는 버스커: 5일 운행을 개시한 새로운 스타일의 야간 여수낭만버스. 남녀 연기자(2명)가 운행 중인 2층 덱과 소호동동다리에서 거리연극을 통해 여수밤바다의 낭만을 전하는 형식. 오후 7시 반∼오후 9시 반(출발 및 도착은 이순신광장). 탑승료는 8월(16, 17, 20일과 22∼31일)엔 1만 원, 9월부턴 2만 원. 문의·예약처는 낭만버스와 동일.

케이블카: 돌산공원과 자산공원을 수상 50m 공중에서 오간다. 캐빈 다섯 개마다 한 개씩 투명바닥 캐빈이 있다. 캐빈에서 보는 미항 여수의 모습이 압권이다. 왕복 1만3000원.

맛집: ◇백천선어마을: 민어·구이·게장전문 식당. 여수시 공화동 740. 061-662-3717 ◇어촌마을: 참장어 샤부샤부. 여수시 신월 5길 38(넘너리바닷가 첫집). 061-644-3377
#여수#여수밤바다#임진왜란#이순신#버스커버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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