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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美서 환수한 덕종어보는 모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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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美서 환수한 덕종어보는 모조품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8-19 03:00수정 2017-08-19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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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종묘 절도사건’ 때 분실, 이완용 차남 소속 기관이 다시 제작… 당시 동아일보 보도로 처음 알려져
문화재청 작년말 복제품 확인… 8개월 넘도록 공개 않고 쉬쉬
2년 전 미국 시애틀미술관에서 환수됐지만 모조품으로 드러난 덕종 어보(위 사진)와 어보의 종묘 도난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동아일보 1924년 4월 12일자 2면 기사. 문화재청 제공·동아일보DB
2년 전 미국에서 환수한 덕종 어보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모조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2015년 환수 직후 외형상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해 10월 성분분석을 실시해 그해 말 모조품임을 최종 확인하고도 8개월 넘게 이를 감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앞서 환수 직후 문화재청은 덕종 어보가 성종이 죽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1471년 제작한 원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18일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 간담회에서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덕종과 예종 어보 5과를 도난당한 사실을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알게 됐다”며 “성분분석 결과 덕종 어보 등 4점의 구리 함량이 70%를 넘어 15세기에 제작된 다른 어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5세기 조선시대에 제작된 어보들은 모두 금 함량이 최소 60% 이상이다.

1924년 어보 도난 사건은 그해 4월 12일 동아일보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종묘전(宗廟殿) 내(內)에 의외사변(意外事變)…덕예(德睿) 양조(兩朝)의 어보를 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조 오백년 역대 왕들의 사위(祠位)를 봉안한 종묘에 도적이 들었다”며 “책임자가 되는 예식과장 이항구가 살펴보니 과연 덕종과 예종 신위 앞에 놓여 있던 어보가 사라졌다”고 썼다. 이항구는 을사오적 이완용의 둘째 아들로, 이왕직에서 어보 관리를 책임지는 예식과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종로경찰서가 수사를 맡았지만 범인과 어보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이에 이왕직은 조선미술품제작소에 제작을 의뢰해 어보 모조품 5과를 종묘에 안치했다.

고궁박물관은 이미 2015년 3월 환수 직후 덕종 어보의 외양이 이상하다는 점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도 “어보를 묶은 매듭 끈이 너무 얇고 긴 데다 거북등이 다른 것에 비해 훨씬 볼록하고 거북의 배 아래에 구멍까지 뚫려 있어 15세기 당시 어보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성분분석에 착수한 시점은 이보다 한참 뒤인 지난해 10월이었고 지난해 말 성분분석 결과를 최종 확인하고도 이를 즉각 공개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올 2월 문화재위원회에 관련 사실을 보고한 뒤 홈페이지에서 관련 정보를 수정했다”고 해명하지만 유물 정보 몇 자를 살짝 수정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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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화재청은 “순종 지시로 이왕직이 제작해 종묘에 정식으로 봉안했기 때문에 모조품이 아닌 ‘재(再)제작품’이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이 침탈된 상황에서 이 어보를 만든 주체가 사실상 총독부이고 금 함량도 떨어지는 조악함을 감안할 때 조선왕조 때 만들어진 재제작품과는 격이 다른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화재청#덕종어보#덕종어보 모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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