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해충 바퀴벌레? 생물-로봇 과학자에겐 매력적인 존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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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불청객, 바퀴벌레의 모든 것
세계 4000여종…한국엔 약 10종 서식
사람에게 병원체 100가지 이상 전파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놀라운 생명력
평생 한번 교미로도 일생 알 낳아
유연하고 민첩한 신체특성 가져
미국-러시아 연구팀, 모방 로봇 개발

미국 UC버클리대 폴리페달 생체역학연구실 로버트 풀 교수팀이 하버드대와 공동으로 개발한 바퀴벌레 로봇. 겉모습은 물론 구조까지 살아있는 바퀴벌레를 흉내내 만들었다. 등껍질은 탄성이 있고 충격을 흡수하는데다 여러장으로 나뉘어 접어진다. 강한 충격을 받아도 문제없고 몸 높이를 절반까지 낮출 수도 있다. 6개의 다리를 교차로 움직이며 좁은 공간 밑에서도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지진 등 재난현장에서 생존자 파악에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UC버클리대 제공
미국 UC버클리대 폴리페달 생체역학연구실 로버트 풀 교수팀이 하버드대와 공동으로 개발한 바퀴벌레 로봇. 겉모습은 물론 구조까지 살아있는 바퀴벌레를 흉내내 만들었다. 등껍질은 탄성이 있고 충격을 흡수하는데다 여러장으로 나뉘어 접어진다. 강한 충격을 받아도 문제없고 몸 높이를 절반까지 낮출 수도 있다. 6개의 다리를 교차로 움직이며 좁은 공간 밑에서도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지진 등 재난현장에서 생존자 파악에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UC버클리대 제공
여름은 ‘극혐’의 대명사 바퀴벌레가 창궐하는 계절이다. 덥고 습한 날씨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혐오스러운 데다 생존력까지 경이로운 수준이니 더욱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과학자에겐 다르게 다가온다. 질긴 생명력은 생물학자들을 매료시켰고 유연성과 민첩성은 공학자들에게 기발한 로봇을 만드는 영감을 줬다. 늘 함께하지만, 함께하고 싶지 않은 바퀴벌레에 얽힌 과학을 살펴보자.

세계적으로 바퀴벌레는 4000종이 넘는다. 이 중 우리가 보는 것은 극히 일부. 전체 바퀴벌레 종의 99%는 야외에서 산다. 원래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 사는 평범한 곤충인데 그중 일부가 도시에 적응했고, 교통과 무역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에 퍼져 지금 우리가 아는 바퀴벌레가 됐다.

한국에는 약 10종류의 바퀴벌레가 산다. 이 가운데 산바퀴와 경도바퀴는 밖에서 살며 독일바퀴와 일본바퀴, 미국바퀴(이질바퀴), 먹바퀴가 실내에 산다. 실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에 진한 갈색을 띠는 독일바퀴다, 이들은 실내 바퀴벌레의 83%를 차지한다.

‘바퀴벌레 혐오’는 건강에 유익하다. 대부분의 바퀴벌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세균과 바이러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퀴벌레가 전파하는 병원체는 100종류가 넘는다. 이들은 음식을 먹을 때 배 속에 있는 것은 토해내는데, 이 과정에서 음식물을 오염시킨다.

여기저기 벗어놓은 허물도 문제가 된다. 세스코 기술연구소 관계자는 “허물이나 사체가 바짝 마르면서 부서져 먼지처럼 날리다 피부에 닿거나 호흡기로 들어오면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며 “바퀴벌레 배설물에 들어있는 물질도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사람에게는 비호감 해충이지만 과학자들에게 이들의 놀라운 생명력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바퀴벌레는 한 번만 교미해도 일생 알을 낳을 수 있다. 미국바퀴는 알 14∼18개가 든 알집을 4∼10일 간격으로 일생 동안 최대 59번 낳는다. 알을 자주 여러 개 낳는 데다 알집을 안전한 곳에 숨겨두는 습성이 있다. 빙하기가 들이닥치고, 지구에 소행성이 부딪쳐도 살아남은 비결이다.

수컷 없이 암컷끼리도 번식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도 올해 3월 나왔다.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팀이 암컷 세 마리를 같이 뒀더니 열흘 만에 미수정란을 이용해 자손을 번식했다. 바퀴벌레가 단성생식을 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밝혔다. 그 후 열다섯 마리를 함께 두는 실험을 했더니 이런 방식으로 3년 동안이나 무리를 유지했다.

놀라운 생존력은 바퀴벌레의 유연하고 민첩한 신체 덕분이기도 하다. 바퀴벌레의 이동 속도는 초속 25cm로 다른 곤충보다 빠른 편이다. 몸 두께를 원래보다 20% 이상 납작하게 만들어 좁은 곳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런 특성은 공학자를 매료시켰다. 러시아 이마누엘칸트발트연방대 연구팀은 지난해 9월 바퀴벌레의 재빠른 발을 흉내 내 로봇을 만들었다. 몸길이는 약 10cm이며 초당 약 30cm씩 움직인다. 내비게이션과 센서가 달려 있어 길을 찾거나 장애물을 피할 수 있으며 원격조종도 가능하다.

지난해 2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폴리페달 생체역학연구실 로버트 풀 교수와 하버드대 로봇공학자 코식 자야람 교수팀이 개발한 로봇은 외골격이 마치 트럼프카드를 여러 장 펼친 듯한 모양이다. 판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몸을 절반가량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산사태나 지진, 대형 화재 등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재난 현장에서 생존자를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퀴벌레의 생존 노하우를 인간이 배운 셈이다.

바퀴벌레는 뇌와 신경계의 작동을 연구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팀은 2013년 바퀴벌레를 좀비처럼 원격조종할 수 있는 스마트칩을 만들었다. 이 칩을 등에 단 바퀴벌레는 스마트폰 앱으로 조종하는 대로 방향을 바꿔 움직인다.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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