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비키니]‘딸 바보’ 전성시대…‘아들 선호’ 진짜 끝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4일 1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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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서울 소재 모 여대 여성학 교수님 말씀.

“저 어릴 때 밥 먹을 때마다 엄마가 오빠 앞으로 맛있는 반찬 밀어다 주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성학을 공부하게 됐는지 몰라요. 근데 웃기는 건요 어느새 보니까 저도 딸은 놔두고 아들 앞으로 맛있는 반찬 밀고 있더라니까요.”

이란성 쌍둥이 중 아들만 편애하는 내용을 다룬 MBC 주말 연속극 ‘아들과 딸’(1992~93). 이 연속극은 당시 최고 시청률 61%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동아일보DB
이란성 쌍둥이 중 아들만 편애하는 내용을 다룬 MBC 주말 연속극 ‘아들과 딸’(1992~93). 이 연속극은 당시 최고 시청률 61%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동아일보DB

‘딸 바보’들 전성시대에 이 교수님이 특이하신 걸까요? 아니면 여전히 저렇게 생각하는 어머니가 적지 않을 걸까요? 한번 데이터로 알아보겠습니다.

● 확실히 딸을 원한다!

이제 ‘그래도 아들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은 사극 대사처럼 들리는 시대가 됐습니다. 실제로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국종합사회조사에 따르면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2012년 이후 줄곧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의견이 많이 나오거든요. 선호 자녀 성별을 물어본 가장 최신 자료인 201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딸을 선호한 응답자가 아들을 선호한 응답자보다 64.6% 많았습니다.



태어난 순서에 따른 성비를 봐도 아들을 선호하던 분위기가 빛이 바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셋째 이상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는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성별을 알아보고 딸이면 낳지 않았던 것. 2015년에는 셋째 이상 성비도 105.6으로 ‘자연 성비’ 범위를 유지하고 있죠. 원래 진화적으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더 많이 태어나기 때문에 성비가 103~107 사이에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예 직접 성별을 고를 수 있는 입양은 더 심합니다. 국내 가정에서 입양한 사례를 보면 20002년 이후 딸을 선택한 비율이 6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죠. 한 입양기관 관계자는 “실제 입양 신청자 10명 중 9명은 딸을 원한다. 그나마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이 정도 비율에 그치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 아들, 딸 똑같다?

그러면 키울 때도 아들과 딸이 똑같을까요?

통계적으로 이를 알아본 논문 ‘Transition of Son Preference: Evidence from Korea’가 지난달 26일 세상에 나왔습니다. 논문 제목은 영어지만 한양대 최자원 교수(경제학)와 한국외대 황지수 교수(국제통상학)가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연구진은 사교육비조사, 생활시간조사, 한국노동패널조사 같은 조사 결과를 활용해 첫 아이가 아들과 딸일 때 양육 스타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첫 아이가 아들일 때 어머니가 복직할 확률은 9% 포인트 내려갑니다. 연구진은 이를 “딸보다 아들을 어머니가 직접 키우는 확률이 높은 것”이라고 분석했죠. 그러면서 “첫 아이가 아들일 때 둘째를 낳을 확률이 내려간다는 점을 고려하다면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자연스레 자녀가 아들일 때 어머니가 일주일에 일하는 시간도 줄어듭니다. 기본적으로 어머니가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주당 근무시간이 제로(0)이기 때문입니다. 출산 후 2년을 기준으로 하면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주당 근무시간이 1.44시간 줄고, 5년 후에는 2.05시간이 줄어듭니다.

한국에서는 또 아들에게 딸보다 집안일을 절반 정도밖에 시키지 않습니다. 10~18세 아들이 1주일에 집안일을 평균 0.99시간 도울 때 딸은 1.89시간을 돕습니다. ‘평소에 집안일을 돕는다’는 비율도 아들은 27.8%로 딸(44.4%)보다 16.6%포인트 낮았죠.

또 아들은 학원비도 더 많이 씁니다. 중학생 국어, 영어, 수학 학원을 기준으로 아들은 한 달에 평균 26만2250원을 학원비로 쓰지만 딸은 23만2530원으로 아들보다 2만9700원이 적습니다. 또 아들을 가진 부모님은 딸을 가진 부모님보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 학원비 지출을 더 많이 늘립니다. 아들을 낳은 부모는 딸을 낳은 부모보다 자식 ‘가방끈’이 0.3년 정도 더 길기를 기대하기도 했죠.

연구진은 아들과 딸이 모유 수유 기간에서도 차이가 나는지 조사했는데 이 부분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물론 학원비를 논할 정도로 자란 세대는 아직 남아선호사상이 남아 있을 때 태어난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1999년에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딸을 낳은 어머니보다 7시간 적게 일했습니다. 아들과 딸이 집안일을 돕는 시간 차이도 1시간에서 0.7시간으로 줄어들었죠.

앞으로는 이런 구분이 점점 더 사라질 겁니다. 지금은 문자 그대로 남아선호사상이 과도기(in transition)를 지나고 있는 거니까요. 그마저 끝물입니다.

그러니 교수님, 제가 보니까 아드님 팔 길더라고요. 그냥 반찬 그 자리에 놔둬도 잘 먹을 겁니다. 굳이 따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나저나 옛날에 그렇게 아들만 좋아해서 어떻게 됐을까요? 지난달 말 주민등록인구를 기준으로 20~24세 인구 중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20만3344명 많습니다. 25~29세도 16만1013명 차이입니다. 그러니 20대 남성 여러분, 힘내세요. 여러분이 연애를 못하는 건 꼭 여러분 잘못만은 아닙니다. ㅠㅠ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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