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위 비틀비틀… 아슬아슬 인증샷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 성곽길 위험천만한 밤 풍경

8일 밤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한양도성 성벽 위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며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 높이 
10m 이상의 성벽에는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성벽 위에 앉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8일 밤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한양도성 성벽 위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며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 높이 10m 이상의 성벽에는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성벽 위에 앉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꺄악!”

7일 오후 9시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 한양도성(사적 10호)에서 젊은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여성은 높이 10m가 넘는 가파른 성벽 위에 있었다. 함께 있던 남성이 여성의 어깨를 잡고 밀었다 끌어당기는 장난을 친 것이다. 성벽 폭은 채 1m가 안 돼 보였다. 발을 조금만 헛디뎌도 추락할 수 있다.

잠시 후 이들은 성벽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양다리는 절벽 아래로 향했다. 캔맥주를 마시던 남성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좁은 성벽 위에 드러눕다시피 하며 아슬아슬한 포즈를 취했다. 성벽이 최대한 길어 보이게 찍기 위해서다. ‘위험한 촬영’을 10여 차례나 시도했다. ‘성벽에 올라가지 마시오’라고 쓰인 현수막이 무색했다. 주위에서 10여 명이 이들처럼 술을 마시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최근 서울의 사대문을 연결하는 성곽이 드라마, 영화의 주요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인기 데이트 코스’로 떠올랐다. 문제는 이와 비례해서 안전사고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좁은 성벽 위에는 난간 등 별다른 안전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위에서 술을 마시거나 위험한 장난을 친다. 지난해 4월 종로구 동대문성곽공원 인근 성벽 위에서 한 남성이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여름철 ‘안전 불감증’은 더 심하다. 이날도 짧은 치마를 입은 30대 여성은 자신의 키와 비슷한 높이의 성벽 위에 올라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친구의 손을 잡았다 놓치기를 반복하다 급기야 땅 바닥에 미끄러졌다. 가까스로 올라가서도 안전에 무감각한 행동은 이어졌다. 성벽 맨 위에 놓인 돌은 지붕처럼 경사져 있다. 이 돌에 앉으면 조금만 부주의해도 아래로 미끄러지기 쉽다. 이 여성은 돌 위에 앉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다 장난스럽게 서로 몸을 밀치기도 했다.

성벽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자신의 방문을 증명할 ‘인증 사진(인증샷)’을 촬영했다.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행동이 담긴 ‘아찔한 장면’을 인증 사진으로 남기려 한다. 야경을 한눈에 감상하기 좋은 낙산공원 성곽길과 부암동 청운공원 인근 성곽길 등에는 ‘아찔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학생 곽모 씨(21·여·서울 송파구)는 “‘어떻게 그런 사진을 찍었느냐’는 찬사를 들으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 사람들은 비슷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자극을 받기 마련이다. 대학생 송모 씨(21·여·인천 부평구)는 “이미 SNS에서 자극적인 사진을 많이 봤다. 더 과감한 사진을 남기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성벽 위에서는 더 자극적인 사진을 찍기 위한 ‘자리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성곽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안전사고에 대비해 주기적으로 순찰하며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양도성에 하루 많게는 수만 명까지 몰리는 상황에서 방문객을 모두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방문객들이 직원들의 경고를 무시하기가 일쑤다. 성벽 위에 올라가면 문화재 관리행위 방해죄에 해당돼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나 실제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양도성은 길이가 18km에 달하는 긴 구간이다. 현실적으로 단속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성벽#인증샷#성곽#안전 불감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