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의 뉴스룸]‘짝짓기 정치’의 묘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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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정치부 기자
홍수영 정치부 기자
2008년 12월 26일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에 동숙(同宿) 취재를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연내 ‘쟁점 법안’ 강행 분위기로 정국이 폭풍전야인 때였다.

민주당은 전날 선발대 의원을 기습 투입한 뒤 본회의장의 모든 출입문을 쇠사슬로 걸어 잠갔다. 앞에는 가구를 쌓아 바리케이드를 쳤다. 이후 속기사들이 다니는 지하통로를 이용해 나머지 의원과 취재진 투입 작전을 폈다. 한 당직자의 “지금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공지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해 비장한 인사도 올렸다. 의원과 국무위원만 출입할 수 있는 본회의장을 밟을 땐 국회법 위반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회의장보다 한 층 높은 방청석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생리현상이 걱정돼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본회의장 생활은 하루로 끝났다.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외부로 타전하는 게 성가셨던지 민주당은 다시 기자들을 내보냈다. 그렇지만 의원들의 점거는 해를 넘겨가며 12일 동안 이어졌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의 ‘동물국회’ 시절 가능했던 일이나 81석의 소수 야당으로는 달리 방법도 없었다. 당시 국회는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자유선진당 등 보수 야당의 도움 없이도 172석의 거대 여당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국회에선 여당인 민주당도, 제1야당인 한국당도 ‘나 홀로 정치’를 고집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한국당 간사는 지난달 21일 국민의당, 바른정당 간사와 점심 회동을 하며 야3당 공동 대응을 다짐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그날 오후 바로 배신을 당했고 결국 다음 날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됐다. 앞서 20일 문재인 정부의 기틀을 잡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선 민주당이 쟁점이던 물관리 일원화 카드를 접었다. 4대강 사업을 겨냥했다는 두 보수 야당의 협공을 넘지 못해서였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출범한 ‘신(新)4당 체제’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정당 간 사안별 합종연횡을 낳고 있다.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신3각 협치’,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야3당 공조’, 한국당-바른정당의 ‘보수 야당 협공’ 등 전략도 난무한다. 어느 정치세력이나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왕따’가 돼선 안 된다. 둘이든, 셋이든 ‘짝짓기 정치’를 해야 한다. 여소야대와 의석의 황금분할로 여당은 국정을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게 됐고, 야당들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소수 여당을 견제할 수 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물론 최다 표차로 정권을 되찾은 여권은 불만스러울지 모른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야당 전체 지지도가 여당의 반도 안 되는데 의석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며 ‘국회 해산권’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거대 여당 시절 여권에는 ‘독주’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이는 청와대의 힘이 빠질 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현 선거제도에서 여소야대의 다당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의회정치에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 게임’을 실험해 볼 모처럼의 기회다. 또 반드시 여권에 불리한 것도 아니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
#한국당#바른정당#보수 야당 협공#짝짓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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