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한국에서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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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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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부모로 산다는 건 힘들다. 보살핌과 배려는 물론이고 자기희생과 참을성이 없으면 안 된다. 그리고 아이가 아플 때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간호해야 한다. 올해는 아내와 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여름휴가를 취소하고 말았다. 2주간 네덜란드를 경유해서 포르투갈로 가기로 돼 있었지만 ‘아이’가 아파서 여행 계획이 무산되었다.

여기서 우리 ‘아이’는 사람이 아니고 고양이다. 어떤 독자에게는 터무니없는 말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이 새로운 어법을 바로 한국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내가 한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가 1996년 7월이었다. 그 당시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요즘보다 훨씬 적었다. 어느 가족에게 애완동물이 있었다면 주로 애완견이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때는 모든 갯과 동물이 그냥 ‘개’라고 불렸다. 어릴 때만 ‘강아지’를 덧붙였다. 지금은 개와 강아지가 서로 다른 개념이 된 것 같다. 자기 애완견은 그냥 ‘개’라 부르지 않는다. 감정이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기르는 한국 사람은 그때는 보기 드물었다. 내가 네덜란드와 호주에 살았을 때 우리 집에는 항상 고양이가 있어서 그런지 난 타고난 ‘고양이 팬’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동료들에게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 가장 흔한 대답은 “고양이 무섭다”였다. 밤에 눈이 빛나고 울음소리가 갓난아기 우는 소리와 비슷해서 그렇다나.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 안에 악령이 산다고 했고 고양이를 죽이거나 해치면 밤에 와서 보복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을 몇 명 봤지만 거의 쥐를 쫓기 위한 용도였다. 대부분 고양이 이름은 나비였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증가했다. TV 프로그램에서 좋은 소재로 취급을 받고 광고에도 나오고 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 카페까지 생겼다. 1990년대에 남은 찌개와 밥을 먹이로 줬던 반면 요즘은 동물병원에서 다양한 사료, 통조림, 간식을 사서 먹일 수 있다. 5년 전에 옛 동료가 나한테 한국에서 출판된 길고양이(더 이상 ‘도둑고양이’라고 안 부른다!) 사진을 담은 책을 선물로 주었을 무렵 드디어 고양이가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고양이 검보는 우리와 11년 동안 살았다. 동네 동물병원에서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다. 엄마 고양이 다솜이의 막내 새끼 고양이였던 검보는 몸이 약해서 원장 선생님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던 중이었다. 아내가 원래 동물 털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일단 주말에 시험 삼아 집에 데려왔다. 아무런 알레르기 반응이 없어서 길한 징조로 보고 검보를 입양했다.

첫날에는 텔레비전 뒤에 숨어 나오기를 꺼렸다. 다음 날 차츰차츰 용기를 내어 기어 나오더니 탁 트인 장소에 앉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기가 마치 우리 집의 주인이 된 듯하다. 제 멋대로 행동하고 음식이나 포옹이 필요할 때면 우리에게 마구 소리를 지른다. 약간 심술쟁이이긴 하지만 우리는 검보를 사랑한다. 인생에 잴 수 없는 즐거움을 가져왔다.

하지만 요즘 건강 상태가 ‘묘’하게 됐다. 가끔 이유 없이 토한다. 그것도 하루에 몇 번씩. 동네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피를 뽑고 X선을 찍고 초음파 검사도 받았다. 다행히 성격이 순해서 검사를 진정제 없이 받았다. 마치 자식인 양 별거 아닌 것까지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결과는 애매하다. 동네 병원에서는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대학 동물병원에 가기를 권했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후회는 없다.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기에 당연히 휴가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검사비용이다. 검사비와 혹시 모를 수술비용을 따지면 수백만 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아내와 나는 왜 아픈 애완동물들이 그렇게 버려지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이제는 ‘반려견’ ‘반려묘’라 부르고 동물병원에 예약 전화를 걸면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애완동물은 이제 그 집의 아이로 불릴 만큼 한국 사회가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많이 변했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수준은 많이 부족하다. 올여름에도 얼마나 많은 강아지와 고양이가 버려질지 두렵다.

그래서 한 가지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 애완동물을 키우려면 애완동물 숍에서 사는 것보다 동물보호소 또는 동물병원에서 입양했으면 한다. 비록 일부지만 그들의 이기심과 생명을 함부로 여겼던 것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어도 되지 않을까.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애완동물#애완견#고양이#여름 휴가#반려견#반려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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