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운영회가 입점비 명목 수천만원 뜯어가… 일그러진 ‘동대민국(東大民國)’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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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상인운영회 ‘불법 갑질’… 입점 상인 10년 넘게 피해

오후 8시부터 붐비기 시작하는 서울 동대문의 의류도매상가 밀집 지역.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오후 8시부터 붐비기 시작하는 서울 동대문의 의류도매상가 밀집 지역.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동대문 D의류상가 도매상인들은 자신들의 일터를 ‘동대민국(東大民國)’이라고 부른다. 개장 시간 오후 8시∼이튿날 오전 8시, 밤낮이 뒤바뀐 이곳은 ‘치외법권’ 지역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상인운영회(운영회)라는 자치 조직이 특정 세력에 의해 사유화되면서 상인들을 상대로 ‘입점비’ ‘퇴점비’ 등을 뜯어내는 등 불법적인 관행이 10년 넘게 이어져 온 것이다. 상인들에겐 운영회의 지시가 곧 법이었고 그 ‘법’을 어기면 옷 장사를 할 수 없었다.

국내 의류시장 매출의 30%인 연간 15조 원을 벌어들이는 동대문 의류상가 일각의 어두운 실태가 최근 경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동대문의 대표적 도매상가인 D상가 운영회의 불법행위를 수사해 지난달 서모 사장과 오모 전무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 점포주와 상인 사이 똬리 틀고 전횡

서울 동대문의 D의류상가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운영위원회가 입점 상인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입점비, 퇴점비 등을 걷어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동대문의 D의류상가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운영위원회가 입점 상인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입점비, 퇴점비 등을 걷어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D상가는 지하 2층∼지상 5층 규모에 점포는 400여 곳에 이른다. 상인들은 평균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180만 원을 내며 4.23m²(약 1.25평) 크기 점포 한 칸을 얻어 장사하고 있다. 점포마다 소유주가 따로 있지만 이들로부터 임대 계약과 관리 권한을 위임받은 운영회가 중간 길목에서 상인들에게 전횡을 일삼는 구조다. 상인들은 운영회가 계약이나 규약 등 법적 근거도 없이 걷어가는 돈이 한 해 수천만 원에 달한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운영회는 처음 입주하는 상인들에게 점포 보증금과는 별도로 500만∼3000만 원의 ‘입점비’를 물려왔다. 운영회는 상가 활성화 또는 기존 상인에게 주는 권리금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운영회로부터 권리금을 돌려받은 상인은 거의 없다. 사실상 강제적 기부금인 셈이다. 입점비 액수는 정해진 기준도 없다. 상가 운영 경험이나 인맥이 취약할수록 더 많은 액수를 요구받는다는 게 상인들의 증언이다.


운영회는 계약이 만료된 점포를 다른 점포로 ‘강제 이주’시킨 뒤 추가로 입점비를 받기도 한다. 한 상인은 “가게를 안 옮기고 버티자 운영회에서 찬조비로 2000만 원을 요구해 계약서에도 없는 돈을 내고 겨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상인들은 운영회의 횡포를 못 이겨 가게를 접을 때에도 200만∼800만 원의 퇴점비를 내야 했다. 운영회가 전액 돌려줘야 할 보증금의 일부를 퇴점비 명목으로 차감하고 나머지만 돌려주는 식이다. 운영회는 퇴점비에 대해 “가게가 빠진 뒤 반품이나 환불 문의가 있을 것에 대비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상인들은 “반품, 환불 요구는 드문 일인데 운영회로부터 퇴점비를 제때 돌려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은 매주 5만∼15만 원의 홍보비와 명절 행사비용으로 한 해 50만∼100만 원을 운영회에 납부한다. 하지만 실제 집행 내용은 공개되지 않아 상인들은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특정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해 점포 수리를 하라는 운영회의 강요에 못 이겨 멀쩡한 점포를 시세보다 웃돈을 주고 고치는 경우도 많다. 한 상인은 “갈취 피해를 덜 당하려면 운영회 간부에게 고급 양주나 현금 등 수백만 원을 지속적으로 상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운영회 고위 간부들 수십억 횡령 혐의

경찰은 운영회의 이 같은 관행이 10년 넘게 이어져 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운영회가 상가 주인들로부터 일정 권한을 위임받았더라도 경비, 청소 등 일반적인 관리 수준을 넘어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거액을 요구한 행위는 공갈죄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경찰은 “운영회 측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어김없이 보복이 가해졌고 조직폭력배로 보이는 사람들이 큰소리로 겁박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상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특수공갈과 강요 혐의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또 운영회 고위 간부들이 홍보비와 행사비 명목으로 걷은 돈 수십억 원을 횡령한 정황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회 측은 “입점비는 동대문시장의 관행에 따라 받아왔지만 얼마 전 없앴고 퇴점비도 받지 않고 있다. 홍보비도 투명하게 집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최근까지 입점비를 요구받았고 퇴점비 역시 운영회가 돈이 없다며 보증금 자체를 안 돌려주고 있어 떼어가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 상인들 왜 10년 넘게 당했나 ▼

‘문제 상인’ 찍히면 다른 상가에도 입점 거부당해
1주일 단위로 의류 제작 ‘스폿’ 방식… 가게 옮기면 수천만원 재고 부담


서울 동대문 D의류상가 도매상인들은 동대문 특유의 의류 생산 방식 때문에 상가운영회의 부당한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시장 반응을 주시하면서 일주일 단위로 디자인을 바꿔 소량 제작하는 이른바 스폿(Spot) 생산 방식이어서 운영회의 점포 이주 요구에 취약하다는 얘기다. 상인들이 운영회 측 요구에 불응하다 아예 다른 상가로 가게를 옮기게 되면 새 장사를 준비하는 2, 3주 동안 그전에 만든 옷은 유행이 지나버려 재고로 남게 된다. 통상 보름 치 재고가 쌓이면 손실액은 3000만∼5000만 원에 이른다.

운영회의 ‘착취’를 피해 다른 상가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다른 상가의 운영회도 운영회 측과 갈등을 빚고 나온 상인은 ‘문제 상인’으로 간주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의류 도매상은 국내 최대 시장인 동대문에서 밀려나면 기존 수입을 유지하기 어렵다. 간신히 쫓겨나지 않았더라도 한 번 미운털이 박히면 상가 내에서 점포를 자주 옮겨야 하거나 입점비나 퇴점비 등의 액수가 더 늘어난다.

오후 8시∼다음 날 오전 8시인 ‘올빼미 영업시간’도 상인들이 문제 제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다. 한 상인은 “경찰에 신고하고 싶어도 휴식을 취해야 할 낮에 깨어 있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D상가의 상인은 약 80%가 여성이다. 이들 대부분이 오전에 잠깐 눈을 붙이고 오후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숨죽이던 상인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해 매출까지 크게 줄자 “더는 못 견디겠다”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서울연구원의 지난달 발표를 보면 올 2분기 동대문 관광특구 상인들의 매출 체감도는 사드 사태 전인 전년 동기의 50∼60% 수준에 불과하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예윤·김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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