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부문서 넘버원’ 삼성전자의 질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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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24년 인텔 아성 깨

‘띵 딩딩딩딩.’ 2000년대 초 TV를 켜면 인텔 특유의 이 효과음으로 시작하는 광고가 끊임없이 나왔다. 신형 PC는 무조건 ‘인텔 인사이드’, 말 그대로 인텔 부품을 썼다는 의미의 이 스티커들을 달고 있어야만 팔리던 때다.

1968년 창립한 미국의 반도체 회사 인텔은 매년 고성능 프로세서를 발표하며 1980년대 이후 업계를 주름잡아왔다. 인텔의 반도체 제품인 ‘펜티엄’이 곧 PC를 부르는 이름처럼 통했을 정도다. 그렇게 지난 24년간 PC 시장을 기반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 1위를 지켜온 인텔은 27일(현지 시간) 그 왕좌를 처음으로 2등 삼성전자에 내줬다.

인텔이 이미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1983년 3월 후발주자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꾸준히 인텔과의 매출 격차를 좁혀왔다. 특히 인텔이 PC용 중앙처리장치(CPU)에 주력할 때 삼성전자는 모바일 기기의 핵심인 D램 분야에 집중했다.

사업 진출 10년 만인 1992년, 세계 D램 시장에서 1위에 오른 삼성전자는 2002년에는 낸드플래시에서도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플래시 메모리가 모바일 시대의 핵심 제품으로 뜰 것이라는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덕”이라며 “PC에서 모바일로 세계 전자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 맞춰 변화에 순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크게 ‘세트’와 ‘부품’으로 나뉘어 있는 삼성전자 특유의 포트폴리오도 이번 실적 신기록의 밑거름이 됐다. 세트는 TV와 스마트폰, 생활가전처럼 완성품을 말하고, 핵심 부품인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를 만드는 곳이 부품 사업부다.

이 같은 포트폴리오는 전자업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반도체 수요를 이끌어내고 TV가 디스플레이 수요를 이끌어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공급 과잉으로 부품업계가 불황이던 2012∼2013년에는 스마트폰 등이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하며 실적을 견인했다. 특히 세트와 부품 사업부가 서로 완전히 분리된 덕에 애플처럼 완성품 시장에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에서도 부품은 삼성전자에서 받아쓸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황금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하반기에도 세계 1등 기록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날 발표된 삼성전자의 사상 최대 2분기(4∼6월) 실적에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업계의 새로운 피할 수 없는 힘(force)”라며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품사업에서의 지배력이 너무도 뚜렷해 애플 등 경쟁업체들이 반전을 꾀할 다른 분야를 찾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 마련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태 KAIST 교수는 “인텔이 이번 실적에서 처음으로 삼성전자에 무릎을 꿇은 것은 사실이지만, 도리어 주가가 올랐다는 점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실적 발표 직후 인텔의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최고 4.5%까지 올랐다. 모바일 시장으로의 전환에 뒤처졌던 인텔이 최근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및 자율주행차량 전용 칩 공급에 집중하는 점을 시장이 높게 평가한 것. 인텔은 최근 이스라엘 자율주행차 업체인 모빌아이를 인수했다.

이 교수는 “IBM이 AI 컴퓨터 ‘왓슨’으로 다시 재기에 성공했듯 미국 대기업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포트폴리오에 강하다”며 “지금 삼성전자가 기기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1등 자리에 올랐다고 안주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삼성전자#반도체#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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