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좋아 기부금” 울며 내는 교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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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립대 ‘반강제 모금’ 논란

서울에 있는 4년제 A대의 교수들이 4일 전임 총장 두 명을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학교 측이 교수들에게서 반강제로 걷은 기부금을 총장의 개인 소송 비용으로 썼다는 것이다. 고발장에 따르면 A대 교수 41명 중 37명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학교 측에 기부금 명목으로 6억4000만 원을 냈다. 지난 6년간 총 8000만 원의 기부금을 낸 권모 교수는 “‘학교가 버텨야 당신들 월급도 줄 수 있다’는 재단 측 주장을 무시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 대출 알선하고 기부금 요구

A대처럼 교수들에게 ‘반강제 기부금’을 모금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교수들은 승진과 재임용 권한을 쥐고 있는 학교 측의 요구를 무시했다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기부금을 낸다. 대학들은 교수들에게 손을 벌리며 교묘한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A대는 교수들에게 연봉을 올려주겠다고 제안한 뒤 증액된 액수만큼 정기적으로 기부하도록 했다고 한다. 교수 임금은 재단이 지출하는 교육비로 분류되는데 이 항목의 비중이 높을수록 교육부 대학평가 때 유리하기 때문에 연봉을 올린 뒤 그만큼을 기부금으로 되돌려 받는 것이다. A대는 교수들에게 연봉 상승분 외 별도의 기부금을 요구하면서 특정 은행과 연계해 저리 대출까지 알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의 한 2년제 대학 총장은 3월 교수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건물 신축에 돈이 필요하다며 기부금을 내라고 종용했다. 이 대학 김모 교수는 “편지에 방 하나당 500만 원, 지하주차장 한 구획당 300만 원이 든다는 식으로 비용 명세가 자세히 나와 있어 돈을 안 내놓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일부 종교 재단이 세운 대학에서는 기부금 납부를 종교적 의무로 규정하고 은근히 압박한다. 경기도의 한 4년제 대학에 근무한 서모 교수는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매달 30만 원을 기부한다. 서 교수는 “학교 사정을 뻔히 아는데 동참해 달라고 하면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는 교수에게 지원된 자녀 대학 학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기부금을 받고 있다. 이 대학 한모 교수는 “큰딸이 3년 전 대학에 입학한 뒤 매 학기 학교에서 등록금이 나오긴 하지만 곧바로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 암묵적인 룰이기 때문에 해당 교수들은 대부분 체념했다”고 털어놨다.

○ ‘집단 사표’ 반발

교수들에 대한 ‘반강제 기부금’ 모금은 주로 규모가 작은 일부 사립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상위권 명문 대학의 경우 대기업과 동문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기부금을 받고 있지만, 일부 대학들은 등록금 말고는 다른 수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하위 등급을 받아 학생 정원을 감축해야 하는 학교의 재정난은 더 심각하다.

교수들이 전직 총장을 고발하는 사태까지 이른 A대의 경우 2015년 대학평가에서 ‘D―’(미흡) 등급을 받아 신입생 정원이 200명에서 180명으로 10%가 줄었다. 교수들의 부담은 가중됐다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들에게서 거둔 기부금을 다른 용도로 빼돌려 학내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서울의 한 2년제 대학 교수들은 5월 학교 측의 기부금 종용에 반발하며 동반 사표를 제출했다. 전임 재단 이사장의 세금 체납으로 국세청에 교비가 압류돼 학교 측이 교수들에게서 1인당 500만 원씩 추가 기부를 권유하자 교수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홍성학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은 “대학들이 등록금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지만 교수들에게 기부금을 요구하는 대학들은 불투명한 재단 운영으로 재정 부실이 더 심각해진 사례가 많다”며 “재단 이사회의 감시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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