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대 물리학과와 <귓속말>, 연기파 배우의 흔한 프로필 이상윤

  • 여성동아
  • 입력 2017년 7월 20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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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에겐 뇌섹남, 연기파, 최고 시청률이 자연스럽다. 전력 질주로 달려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배우 이상윤(36) 하면 작품보다 다른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이를테면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의 엄친아라든지 미녀 스타와 공개 연애한 전력 같은 것. 2007년 드라마 〈에어 시티〉로 연기에 입문, 47.6%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내 딸 서영이〉 (2012~2013)를 비롯해 많은 작품에 출연했음에도 극 중 이상윤의 캐릭터가 선명하게 형상화되지 않았던 건 기자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거나 무관심의 소치일 수도 있고, 그의 연기에 매료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던 그가 최근 종영한 드라마 〈귓속말〉을 통해 ‘꼭 만나고 싶은 배우 1순위’로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됐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신념이 투철한 판사에서 부패 권력의 파트너가 되었다가, 잘못을 바로잡아가는 강직한 변호사로 변신을 거듭하는 이동준 역으로 데뷔 10년 차 배우의 연기 내공을 제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출연한 멜로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렬한 눈빛으로 이동준의 복잡한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낸 그에게 시청자들은 높은 시청률(최종회 20.3%)로 화답했다.

멜로물만큼 장르물이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네요.
시청자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동준을 연기하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한 사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터지는 상황이 거듭돼서 매회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소화불량인 채로 다른 음식을 입에 넣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매회 100m 질주를 하는 느낌이었죠.

〈내 딸 서영이〉 이후 4년 만에 다시 상대역으로 만난 이보영 씨와의 촬영은 어땠나요.
이보영 누나가 워낙 밝고 재미있는 성격이어서 함께하는 동안 즐거웠어요. 〈내 딸 서영이〉 이후 누나와 계속 1년에 한두 번씩 만났기 때문에 연기자 선배라기보다 친척 누나 같은 느낌이 강해요. 지성 형과도 친하고요. 그러다 보니 누나와 베드신을 찍을 때 어색한 순간이 있었어요. 베드신 자체가 처음이기도 했고요. 옷을 다 벗은 건 아니지만 극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장면인 만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게 연기해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았죠.

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원래 몸무게가 70kg 중후반대였는데 〈귓속말〉을 찍으면서 살이 계속 빠졌어요. 신경을 많이 쓰고 수면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촬영이 없는 날에도 예민해진 상태여서 잠을 깊이 자지 못했어요. 서로 목을 조르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겉으로는 점잖게 대화하면서 ‘널 죽여버리고 싶어’라는 속내를 눈빛에 담아내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거든요.

힘든 만큼 연기가 는다고 하더라고요.
맞는 말 같아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제 감정이 황폐해질수록 독기 같은 것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런 에너지를 연기에 녹여내면서 스스로 변화를 꾀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나요.
운동을 무척 좋아해서 주로 농구로 풀어요. ‘진혼’이라는 연예인 농구단 멤버로 뛰고 있어요. 배우 이기우, 여욱환, 노영학 씨도 저희 농구단 소속이에요. 〈귓속말〉을 같이한 권율 씨도 조만한 영입할 계획이고요. 경기가 일주일에 세 번 있는데 이번 드라마를 찍는 동안에는 한 번도 나가지 못했어요.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에 있는 원정 경기에 나가려고요.

권율 씨를 도넛으로 자주 감동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매일 아침 식사를 김밥으로 때우다가 메뉴를 한번 바꿔보려고 도넛을 몇 번 사 갔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권율 씨의 눈에 띄었어요. 권율 씨가 저를 볼 때마다 “멋있어요. 역시 형은 아침에 도넛에 커피군요!”라고 말해 정말 민망했어요(웃음).

2000년에 대학에 들어가 13년 만에 졸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연기 활동을 할 때는 학교생활에 충실하기가 어려웠어요. 작품이 끝나면 학교에 다니다가 작품에 들어가면 다시 휴학하는 방식으로 두세 과목씩 수강하다 보니 졸업이 많이 늦어졌어요. 2013년 〈내 딸 서영이〉를 끝내고 그해 1학기와 여름 계절학기 수업까지 열심히 마친 후 졸업했죠.

연예인이 되는 걸 부모님이 반대하셨을 것 같아요.
2004년 광고 에이전시 관계자에게 길거리 캐스팅돼 CF를 찍었어요.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내키지 않았는데 친구들은 물론 부모님까지 경험 삼아 해보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모델 활동을 하면서 연기 학원에 다녔죠.

원래 꿈은 뭐였나요.
고2 때까지 건축을 하고 싶었는데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지가 오히려 다른 길로 가라고 하셨어요. 그 당시 의대가 붐이어서 고3 때는 의대 진학을 꿈꿨고요. 그래서 물리학과에 붙은 후 의대에 가려고 1년을 재수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복학해 물리학을 공부할 때는 교수가 되고 싶었죠. 연구보다 후학 양성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기를 해보니 공부보다 재미있더라고요. 제 길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이라는 스펙이 연기 생활에 득이 됐나요.
데뷔 초반에는 확실히 득이 됐어요. 그로 인해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얻었고, 캐스팅 때도 우선순위에 둘 때가 많았거든요. 실을 꼽자면 제 연기가 미흡해 보일 때 ‘가서 공부나 하지’ 같은 댓글이 달리는 정도예요.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같은 작품을 하는 배우들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소외된 적도 없고요.

〈여성동아〉 독자들을 위해 공부 비법 좀 알려주세요.
우선 공부에 재미를 들여야 할 것 같아요. 공부가 재미없으면 능률이 오르지 않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수학, 물리 같은 이공계 과목을 좋아해서 그걸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반면 국어 공부는 재미가 없었어요. 나름 열심히는 했는데 재미를 못 느껴선지 결과도 제일 나빴어요. 공부를 열심히, 즐겁게 하려면 동기 부여도 무척 중요해요. 저는 그 당시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됐어요. 잠도 많이 잔 편이에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요. 대신 학교에 가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제 자리를 거의 떠나지 않고 공부에 몰입했어요. 〈수학의 정석〉 기초 편과 실력 편을 계속 반복해서 풀고, 영어는 중1 때부터 고2 때까지 과외를 했어요. 나머지 과목은 문제집 풀고, 고3 때는 모의고사 문제를 꾸준히 풀면서 오답노트를 만들어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죠.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입시 제도도 많이 바뀌어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예능 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에 출연할 용의가 있나요.
그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는데 드라마 촬영 때문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집에서 종종 시청하는데 볼수록 안 나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가 굉장히 어렵더라고요(웃음).

일본에서 단독 팬 미팅이 꾸준히 열리고 있는데, 인기 비결이 뭔가요.
드라마 덕분인 것 같아요. 제가 출연한 멜로드라마들이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거든요. 시작은 〈내 딸 서영이〉였어요. 그때부터 일본에서 팬 미팅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구혜선 씨와 함께한 드라마 〈엔젤 아이즈〉도 해외에서 많이 봤더라고요. 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심지어 유럽에 갔을 때 만난 아시아계 현지인도 〈엔젤 아이즈〉 얘기를 해서 놀라웠어요. 화보를 찍으러 동남아시아의 외진 섬에 갔을 때 만난 공항 직원은 그 드라마에서 제가 연기한 인물의 캐릭터와 이름까지 알고 있었어요. 7월에 일본에서 팬 미팅이 있는데 거기서는 〈귓속말〉보다 멜로드라마인 〈공항 가는 길〉이 더 좋은 반응을 얻을 것 같아요.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한 가지 이미지로 기억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돼 있으면 좋겠어요. 연기 폭이 넓고, 어떤 작품에서든 제 몫을 해내는 배우요.

그때는 결혼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독신주의자는 아닌데 아직 결혼 얘기를 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어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제 자신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사진제공 제이와이드컴퍼니 디자인 김영화

editor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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