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SNS 성희롱, 벽돌로 車 파손… KAIST 교수 수난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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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 IP주소로 두달간 협박 e메일… 수강정원 줄이자 가짜뉴스 퍼뜨려
강의평가서엔 원색 욕설 넘쳐나… 한 교수가 피해 알리자 사례 쏟아져
교수들 “학교차원 대응시스템 절실”

대전 KAIST의 A 교수(여)는 지난해 10월부터 마음고생이 심하다. 자신의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보낸 e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및 학교 게시판에 올린 7차례의 글 때문이다. 욕설은 기본이었다. 폭행하겠다고 협박하는 내용도 있었다. 심지어 판타지 소설 형식의 글을 통해 자신을 성희롱 대상으로 삼았다. A 교수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 “학생 보기가 겁이 난다”

A 교수의 신고를 받은 학교 전산팀은 경찰과 함께 수개월간 추적 끝에 학생을 특정했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없었다. 해당 학생이 추적을 피하려고 우회 인터넷주소(IP주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학부모를 통해서야 자백을 받았다. 학생은 경찰에서 “전공 수업 등에 불만이 많았다. 친절한 A 교수가 오히려 가식으로 느껴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학생을 성폭력범죄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학교 측은 이달 중 상벌위원회를 연다.

9개월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A 교수는 이달 초 전체 교수에게 e메일을 보냈다. 자신의 피해 내용을 설명하고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학교의 미온적 대처도 지적했다. e메일 발송 하루 만에 ‘유사 피해’를 호소하는 교수들의 e메일 3건이 이어졌다. 놀란 교수들은 너도나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동안 총학생회 등을 통해 교수의 학생인권 침해 실태는 종종 공개됐지만 정작 학생의 교수인권 침해는 알려진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국 국적의 한국인 B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 교육개혁의 하나로 교양과목 수강정원을 줄였다가 곤혹스러운 일을 당했다. 학생단체와 협의가 지지부진해 어쩔 수 없이 계획대로 시행했더니 SNS에 ‘교양과목대란’이라는 글이 퍼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한국계인 B 교수를 ‘검은 머리 외국인 꼰대’라는 식으로 비아냥댔다. 하지만 미리 보완책을 마련했기 때문에 실제 교양과목 신청대란은 없었다. 학생들은 뒤늦게 SNS에 사과의 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 26일 학교 주차장에 세워놓은 C 교수의 승용차 곳곳이 파손됐다. 누군가가 벽돌로 부순 것이다. 출동한 경찰에 붙잡힌 사람은 C 교수의 옛 제자였다. 석사과정에 다니다 제적된 학생이었다. C 교수는 “제적당한 뒤 찾아와 카페를 개업하는데 빚보증을 해달라고 요구해 난색을 표하자 앙심을 품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학교에 간 가해자가 교수 차량을 발견하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D 교수도 지난 학기 학생들의 강의평가 결과를 확인하고 오랜 기간 정신적 충격에 시달렸다. 강의에 대한 진지한 의견은 없고 자신을 향한 원색적 욕설만 넘쳐났다. D 교수는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언어폭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강의실에서는 순진한 얼굴로 앉아 있는 학생들이 뒤에서 그런 욕설을 쓴다는 걸 생각하면 씁쓸하다”고 말했다.

○ ‘교권 보호’도 필요한 상황

학생 일탈로 인한 피해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교수들은 학교 차원의 대응 시스템 마련을 주문했다. A 교수는 “작년 10월 사건을 처음 접한 학교 측이 ‘이것은 교수님 개인의 일이니 학교에서는 해 줄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교원 안전을 위한 체계를 하루빨리 갖추길 건의한다”고 밝혔다. C 교수는 “각 건물에 경비를 고용하든지 e메일 시스템을 보완하든지 안전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일탈적 공격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부 젊은층의 세태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또 수년 전 연이은 자살사건 후 학생들의 권리 요구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도 주목했다. D 교수는 “학교의 인권교육은 교수가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고 반대의 경우는 전무한 실정”이라며 “학생의 부적절한 행동을 학교는 개인의 정신적 문제 탓으로 돌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교수는 얼마 전 미국 하버드대가 비공개 SNS 채팅방에서 성적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주고받은 입학예정자 10명의 입학을 취소한 걸 예로 들며 “외국에서는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책무를 학생들에게 엄격히 강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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