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용하]데자뷔가 느껴진 새 정부 정책 추진 방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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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정부와 노선 다른 새 정부, 모든 정책 바꾸기 쉽지 않아
70년 동안 만들어진 정책…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이 절차를 합리화하지 못해
정책이 지속 가능하려면 법과 절차에 따라 결정해야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새 정부의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두 달간의 일정을 종료하고, 국정운영 100대 과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재인 정부 5년 청사진에 지난 대선 공약이 어떻게 정리되어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대체로 대선 공약을 가능한 한 실천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가 과거 정부와 차별성이 있는 정책기조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 국방 정책에서부터 정치 경제 복지 교육 등 전 부문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분명히 다른 노선을 가지고 있다. 사드 배치와 북핵에 대한 입장이 다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시장경제에 대한 시각에서 차이가 있다. 보편적 복지와 평준화 교육 정책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새 정부는 지난 정권과 맥을 달리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의 뒤집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탈(脫)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공론화 작업에 착수했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도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민주화 차원에서의 재벌 정책 변화도 예상된다.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신설, 건강보험 비급여 축소 등 복지 확대와 외국어고 자사고 폐지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만 모든 정책의 뒤집기는 그리 녹록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야당이나 생각을 달리하는 세력들의 격한 반대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재 정책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굴곡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다.

특히 외교 국방 정책이 그렇다. 최근 문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에서 돌아와 국무회의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고 한 발언은 4강과 북한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이제까지 해왔던 외교 국방 정책을 일거에 변화시키기 어려움을 인식한 언급으로 해석된다. 경제 복지 교육 등의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수립한 정책 중 바꾼 것이 얼마나 되는지 되짚어 보면, 놀랍게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지난 70년간 성장 일변도의 정책 과정에서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든 구조적 난제들이 쌓여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경제규모와 국민 생활수준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여전히 개발도상국 단계의 정치 행정 사회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이를 과감하게 개혁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과 제도 변화의 필요성이 수단과 절차를 합리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지난 70일 동안 보여준 새 정부의 접근 방식을 보면, 과거 정부의 구태를 데자뷔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 대표적으로 탈원전 정책과 같은 경우 총론적으로 재검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충분한 연구와 분석 그리고 사회적 합의 과정 없이 날치기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답지 않은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EU)이라는 한배를 타고 있지만 프랑스는 친(親)원전 정책을, 독일은 탈원전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은 프랑스와 유사한 친원전 정책을 추구하면서도 독일식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비중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국 나름대로 지난 50년간 가져왔던 원전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으려 하는 식의 편향적 접근 방식이 가져올 수 있는 정책적 혼선과 부작용이 다른 정책에도 적용될까 걱정된다.

통신요금 인하도 그 취지의 좋고 나쁨을 지나서 현재 작동되고 있는 시장 상황을 무시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민심을 반영한다는 명분의 여러 정책에서 정상적인 절차와 과정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는 비판이 있다. 느리고 그래서 좀 답답하더라도 법과 행정 절차를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현 정권이 끝난 5년 후에도 그 정책이 지속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주요 정책에 대해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결정은 일견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위험한 정책 결정 방식이다. 국민 여론은 공론화 과정에서 수시로 변할 수 있고, 현재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사안이라 해도 미래 국민은 정반대의 입장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수의 이해를 무시하는 다수결의 횡포가 궁극적으로 전체주의 폐해를 잉태했던 세계사적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단기적인 성과를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보면, 오히려 일이 꼬여 정작 새 정부가 추구하려는 중심 정책을 제대로 실현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새 정부가 차별화하고자 하는 ‘정부 품격’도 손상될 수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운영 100대 과제#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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