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형석]질주하는 ‘과로 버스’ 첨단장치 달면 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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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석·사회부
서형석·사회부
2007년 한 해 동안 서울지하철에선 선로 투신 사고가 55건 발생했다. 사고를 목격한 기관사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승객과 전동차 안전 사고도 우려됐다. 2009년 서울지하철 1∼8호선 269개 역에 스크린도어(PSD)가 설치됐다. 투신 사고는 거의 사라졌다. 서울지하철은 연간 적자가 4000억 원에 육박한다. PSD 설치에는 약 5년에 걸쳐 1조 원가량이 투입됐다.

수도권 외곽과 서울을 연결하는 광역버스 운행체계는 1995년 도입됐다. 올 1월 기준 노선 수 197개, 버스 2707대에 이른다. 전체 노선을 합치면 길이가 9672km에 달한다. 하지만 광역버스 운전사는 ‘극한직업’의 하나로 꼽힌다. 길게는 4시간 동안 왕복 130km가 넘는 도로를 달려야 한다. 극심한 정체를 뚫고 정류장 수십 개를 지난다. 승하차는 물론이고 자리가 모자라 서서 타는 승객까지 버스 안팎의 안전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 운행 내내 극도의 긴장에 시달린다. 법에서 보장된 휴식시간은 언감생심이다.

주민들의 민원에 쫓겨 지방자치단체가 노선을 신청할 때 운전사 확충의 어려움이나 근무환경 개선은 뒷전일 때가 많다. 지자체에 등 떠밀려 노선을 신설한 버스회사들은 노선 길이와 운행 횟수를 늘리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승객을 많이 태워 적자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운전사는 졸음을 참고 운전대를 잡는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국토교통부와 지자체는 모든 광역버스에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첨단 운전자 지원시스템(ADAS)을 설치하기로 했다. 약 13억5000만 원이 든다. 하지만 근본 대책인 운전사 추가 고용이나 근무환경 개선은 쉽게 언급하지 못한다. 비용 때문이다. 현재 광역버스 운전사는 적정 수준보다 1400명가량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 지역 버스운전사 연봉(4∼7년 차 약 4000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약 560억 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는 PSD에 1조 원을 투자한 경험이 있다. 승객 88만 명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감내할 수 있는 규모다. 좋은 장비가 마련돼도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악순환은 반복된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국민이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과로버스#교통사고#졸음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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