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대결 번지는 국정원 적폐청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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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朴정권때 사건 재조사 파장

“국가정보원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활동은 과거 사건을 거꾸로 미화하고 조작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무엇이 두렵기에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활동을 ‘조작’이라 매도하나.”(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대변인)

국정원 적폐청산 TF가 재조사하겠다고 선정한 13가지 사건을 두고 여야는 12일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특히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적폐라는 표현으로 모든 과거(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함몰시키려고 하는 것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저지하겠다”고 밝혀 국정원 과거사 재조사 논란은 정치권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이 국내 정치 개입 의혹과 단절하겠다며 추진한 적폐청산 TF 활동이 역설적으로 국정원을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 당시 정치권 공방에 마침표를 찍겠다며 국정원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과 닮은꼴이다. 일각에선 보수 정당 집권 시 적폐청산 TF 활동을 다시 조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당이 국정원 TF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전 정권 인사에 대한 정치 보복성 수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국정원이 재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사건은 모두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이다. TF 활동 이후 검찰 고발 등으로 이어진다면 옛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당장 적폐청산 TF가 재조사 대상으로 삼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만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통일비서관을 지낸 정문헌 전 의원과 대화록을 전면 공개한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이 조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재조사 목록에 오른 문화계 블랙리스트 개입 의혹과 추(秋)모 전 국정원 국장의 청와대 비선 보고 의혹,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정보 유출 사건 등도 단순히 국정원 직원을 대상으로 한 내부 조사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낮다.

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한 정치권 인사는 “상당수 재조사 사건이 국정원뿐 아니라 청와대도 연관돼 있다”며 “박근혜 정부 청와대 인사들을 조사하지 않고는 정확한 진상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 현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런 사건들을 선택한 듯하다”고 말했다.

국정원 내부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 국내 파트를 주로 맡은 직원들 사이에선 “언제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쫓겨날지 모른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오간다고 한다.

과거 정권교체기에도 정부 차원의 ‘국정원 다잡기’가 진행됐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될 때 이런저런 구실로 국정원 핵심 인사들이 대량 인사이동되거나 ‘해고 쓰나미’를 겪은 것이다. 한 전직 국정원 인사는 “재조사 목록이 발표되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이제 올 것이 왔다’는 말이 나온다”며 “조직 내부에 ‘정권교체 포비아(공포증)’가 퍼져 있다”고 전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국정원#정치개입#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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