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 신고하고 5대만 운행… 출근시간대 15분간격 ‘돌려막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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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속 달리는 수도권 광역버스

경기 지역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승객들이 서울로 가는 광역급행버스(M버스)에 오르고 있다. 수도권 외곽의 신도시가 늘면서 광역버스 노선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동아일보DB
경기 지역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승객들이 서울로 가는 광역급행버스(M버스)에 오르고 있다. 수도권 외곽의 신도시가 늘면서 광역버스 노선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동아일보DB

예고된 사고였다. 하지만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18명의 사상자를 낸 경부고속도로 광역급행버스(M버스) 7중 추돌사고는 왕복 100km가 넘는 장거리 노선을 하루 5, 6회씩 달려야 하는 수도권 광역버스 운행시스템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정확히 1년 전 20대 여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관광버스 추돌사고, 올 5월 노인 4명이 숨진 영동고속도로 둔내터널 고속버스 추돌사고 등 비슷한 참사가 이어졌지만 도로 위 안전은 여전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 정부·지자체·운수업체 ‘합작’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낸 M5532번 버스는 올 3월 개통했다. 1회 왕복 106.6km를 운행한다. 수도권에서도 손꼽히는 장거리 노선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에 따르면 M5532번을 운행하는 오산교통은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에 ‘버스 7대로 15∼30분마다 하루 40회씩 운행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운행에 투입된 버스는 5대뿐. 운행 횟수도 28회에 그쳤다. 하지만 승객이 많은 출근시간(오전 6시 45분∼7시 30분)에는 15분 간격 운행을 계속했다. 오산시 관계자는 “구인난으로 버스운전사 채용이 안 돼 버스를 7대 사놓고 5대만 운행했다”고 말했다.

사고 버스 운전사 김모 씨(51)는 이틀 연속 운행하고 하루를 쉬었다. 다른 버스회사는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는 방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전날 19시간 가까이 운행해 9일 일어날 때 몸이 너무 무거웠다”며 “가장이니까, 가족들 먹여 살려야지 하는 마음에 나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의 동료들은 “10명 중 8명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라며 “(이번 사고도) 운전사의 잘못이 크지만 뒤에는 이런 살인적인 운행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사고 버스의 특별안전점검에 착수했다. 안석환 국토부 대중교통과장은 “조사 결과에 따라 과실이 확인되면 그에 맞춰 과징금, 사업정지 등의 행정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부 역시 ‘뒷북 점검’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어 보인다. 국토부는 지난해 봉평터널 참사 후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의무휴식제’를 포함해 올 2월부터 시행 중이다. 1회 운행을 마친 운전사는 운행시간에 따라 반드시 일정 시간을 쉬어야 한다. 하루의 마지막 운행을 마친 뒤에는 최소 8시간이 지나야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위반할 경우 버스회사에는 최대 90일의 사업정지 또는 180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법 시행 4개월이 지났지만 실태 파악은 전무하다.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지자체는 인력 부족과 업계 반발을 이유로 손을 놓았다. 경기 광주시의 경우 전담 인원 2명이 약 3000대의 버스를 관리해야 한다. 의무휴식제뿐 아니라 광역버스 입석금지 등 다른 버스 안전정책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서울처럼 준공영제(지자체가 버스회사의 운수 손실을 보전하는 제도)를 실시하는 곳은 지자체가 버스업체에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준공영제가 없는 지자체는 업체의 ‘양심’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가톨릭대 연구에 따르면 경기도 광역버스 운전사의 70.1%가 하루에 15시간 이상, 42%가 하루에 18시간 이상 운전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에 따르면 2015년 버스산업 종사자들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235.7시간. 같은 시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5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의 월평균 근무시간보다 60시간 이상 많다. 하지만 운수업은 근로기준법에서 특례업종으로 지정돼 아무런 제재가 없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관리당국이 운수업체를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 현재 디지털운행기록계(DTG)를 대형차량에 부착하도록 했지만 정기적인 제출 의무와 제재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 수도권 광역버스는 ‘시한폭탄’


수도권 광역버스는 하루에 88만 명이 이용하는 핵심 대중교통 체계다. 하지만 도심의 교통 정체를 뚫고 많게는 50곳 이상 정류소에 승객을 안전하게 승하차시키는 건 오로지 운전사의 책임이다. 고속버스 운전사와 달리 광역버스 운전사는 1회 왕복운행을 마치기 전까지 쉴 수 없다.

수도권에는 왕복 운행거리만 100km가 넘는 광역버스 노선이 11개에 달한다. 가장 긴 9300번은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서 서울 서초구 강남역을 오간다. 항상 정체에 시달리는 인천 부천 도심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왕복 131km를 달린다. 출퇴근시간에는 4시간도 걸리는 경우가 예사다. 하루 5회 운행을 기준으로 하면 운전사마다 600km를 넘게 달리는 셈이다. 서울∼부산 최단거리(약 360km)보다 길다.

김 의원은 “졸음운전 사고는 운수업계의 고질적 문제이자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며 “안전 운행을 위한 휴식 보장과 함께 주당 60시간을 근무하는 현재의 실태를 완화하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황성호 기자 / 신민경 인턴기자 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광역버스#교통사고#졸음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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