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의 오늘과 내일]국면 전환? 무시가 답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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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국제부장
신석호 국제부장
4일 오전 8시 김포공항을 출발한 일본항공(JL-90편)이 두 시간 뒤인 10시경 도쿄(東京) 하네다(羽田)공항에 착륙하자마자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속보들이 휴대전화에 뜨기 시작했다.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오전 9시 40분 발사됐다는 ‘화성-14형’과 잠깐이나마 같은 동해 상공을 날았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며 서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취재 현장에서 북한 핵·미사일 개발 역사를 체험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2년 10월 평양 순안공항에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타고 온 전용기를 봤다. 북한은 켈리에게 “우리는 핵보다 더한 것도 있다”고 말해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북한의 첫 핵실험 한 달 뒤인 2006년 11월 평양 시내 유치원 교실 벽 높은 곳에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홍보하는 붉은 구호들이 붙은 것을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같은 하늘을 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체험이었다. 매년 서로를 방문하는 유서 깊은 동아일보-아사히신문 편집국장·국제부장 교류 행사였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간담회에는 일본 기자 20여 명이 성황을 이뤘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질문이 많았지만 북한 미사일도 화제였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에 나설 것이라고 보나. 그럴 경우 한국 정부는 이를 저지할 수 있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어떻게 대화하겠다는 것인가. 왜 그렇게도 대화에 매달리는가?”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함께 근무했던 옛 친구들이 이렇게 물었다. 당시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일주일이 지난 10일 현재는 많은 것이 정리된 상태다.

첫 질문에 대해.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없다. 한미 당국은 화성-14형 발사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일종의 무시 전략이다. “북한이 ICBM을 쏘면 발사 지점을 타격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으름장을 놓았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 전략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을 공개하는 ‘살라미식 무력시위’로 체면을 세웠을 뿐이다.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하려는 징후가 보이면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 불가피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젠 상식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트럼프의 잦은 군사적 발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은 끔찍한 선택지”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처럼 북한과의 대화로 정치적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북한과의 대화는 그들이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다. 정권 내부에서는 도발에 이어 대화국면이 올 것이라는 ‘국면 전환’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북한은 그다지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번 도발은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으로 시작된 새로운 도발 사이클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들이 설정한 목표인 ‘핵미사일 개발의 완성’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 우린 뭘 할 수 있나. 김정은이 이번 도발을 자랑하며 국내 정치에 몰두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핵미사일을 가지더라도 엘리트와 인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그저 김씨 왕조의 유지 도구일 뿐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핵미사일을 가지면 잘살 수 있다’는 거짓을 그들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화에 조급해선 안 된다.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면서 무시하는 것이 수다.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북한 탄도미사일#북한 핵실험#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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