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민]채용 문화, 직무 중심으로 바뀌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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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한양대 경영대 교수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 교수
정부가 5일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금년 하반기부터 332개에 달하는 전체 공공기관의 채용 평가에서 출신 지역, 가족 관계, 신체 조건, 학력 등에 관한 인적사항을 원칙적으로 삭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대신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활용하여 채용 대상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 기술, 자격, 경험 등을 사전에 공개하고, 이를 근거로 직무수행 적합성을 평가해 인재를 채용하기로 했다. 학벌이나 스펙 대신에 직무수행능력을 중심으로 채용하기 위한 노력은 이미 지난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2007년 고용노동부는 스펙을 중시하는 관행을 줄이기 위해 성별, 출신 지역, 출신 학교명 등을 제외하고 교육, 직업훈련, 경력 등을 기재하는 표준이력서를 개발해 공공부문과 대기업에 보급하였다. 또한 2015년에는 실제 업무 현장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산업 부문별, 수준별로 체계화한 국가직무능력표준을 개발했다. 이를 활용해 해당 직무의 상세 내용 및 직무능력 평가 기준을 정해 사전에 명확하게 공지하고, 이를 토대로 인재를 선발하는 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능력 중심 채용 제도도 도입했다.

이번에 발표된 블라인드 채용 방안은 이 두 가지 정책을 강화하여 결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2007년 표준이력서가 권고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번 블라인드 채용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적용을 의무화하였다. 또한 2015년 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능력 중심 채용 제도에서는 입사지원서에 사진, 본적, 출신 학교명을 포함시킬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채용 과정에서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적사항을 모두 배제하도록 하였다. 이를 통하여 채용 공정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직무수행능력 중심의 채용 제도를 정착시키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의 정당성은 공적 개입의 사회적 효용과 비용을 따져 판단해야 한다. 출신 학교명과 같은 정보는 채용 후보자의 특성을 반영하므로 사회적 효용을 갖는데, 블라인드 채용은 이러한 정보의 사회적 효용을 손실시킨다. 그러나 직무수행능력보다 학벌이나 지연을 중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현실에서, 특정 정보가 갖는 사회적 효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클 수 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한 공적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 비록 역차별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를 바로잡고 모든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지향할 수 있는 조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몇 가지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국가직무능력표준을 기반으로 개별 기관과 채용 직무의 필요 역량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명확하게 정의하는 제도 설계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토대로 직무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시험과 면접 기법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무중심주의가 채용뿐만 아니라 채용 이후의 일하기 방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서 지배적인 일하기 방식은 ‘직무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다. 직무 중심 일하기는 해야 할 일을 직무체계에 따라 구분하고 일정한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직무수행자에게 할당한다. 반면에 사람 중심 일하기는 종합적인 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을 선발하고 이들에게 다양한 일을 대략적으로 나누어 맡기는 방식을 취한다. 사람 중심의 일하기 방식에서는 어떠한 일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지연이나 학연을 활용하여 함께 일하기에 편한 사람들을 채용하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 중심 일하기 방식이 장기적으로 직무 중심으로 개편되어야 직무 중심 채용 제도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 교수
#직무중심의 채용문화#블라인드 채용#직무중심주의#사람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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