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으로 쏟는 땀, 얼음에 피는 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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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 백지선호, 3년째 여름 체력훈련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남자 아이스하키대표팀은 5월 15일부터 11주간에 걸쳐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하고 있다.6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오전 웨이트트레이닝에서 조민호(오른쪽)가 코어 근육(다리와 몸통이 연결되는 척추와 고관절 부위의 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남자 아이스하키대표팀은 5월 15일부터 11주간에 걸쳐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하고 있다.6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오전 웨이트트레이닝에서 조민호(오른쪽)가 코어 근육(다리와 몸통이 연결되는 척추와 고관절 부위의 근육)을 강화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빠르고 쉼 없는 스케이트, 엄청난 활동량으로 모든 싸움에서 상대를 제압하라.’

2014년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백지선 감독(50)은 선수들에게 건넨 시스템북에서 팀 정체성을 이렇게 요약했다. 강한 체력이 필수인 백 감독의 전술을 수행하기 위해 선수들은 요즘 11주에 걸친 ‘지옥 체력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6일 오전 10시 서울 태릉선수촌의 체력단련장인 월계관. 아침 식사를 마친 선수들에게 ‘지옥문’이 열렸다. 5월 15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체력 훈련을 시작한 대표팀 선수 27명(귀화 선수 제외)은 이달 3일 태릉선수촌으로 훈련 장소를 옮겼다.

웨이트트레이닝이 시작되자 월계관에는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100kg에 달하는 바벨을 들어올리거나, 스쾃을 하는 선수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트레이닝복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훈련에 집중하던 선수들은 동료가 힘든 기색을 보이면 “아직 끝나지 않았어” “잘하고 있다”고 외치며 서로 독려했다. 베테랑 선수도 열외는 없다. 훈련 도중 바나나를 먹으며 체력을 보충하던 김기성(32)은 “하루 훈련이 세 타임이나 돼서 힘들다. 잘 버텨내야 한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필드 플레이어 전원이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 퍽을 빼앗은 뒤 빠르게 역습으로 전환하는 ‘벌떼 하키’를 추구한다. 백 감독 부임 전만 해도 대표팀은 지상에서 전문적인 체력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력이 부족했다. 이에 백 감독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 박용수 코치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5년 미국 트레이닝 전문업체 ‘엑소스(EXOS)’의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은 아이스하키 선수에게 필요한 근력과 순발력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선수들은 올해로 3년째인 체력 훈련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진강호 대표팀 트레이너는 “매년 훈련 시작 전에 체력을 측정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근력 등 출발점(훈련 시작 시 측정량)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4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 리그)에서 한국이 2위로 사상 첫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 승격을 이뤄낸 것도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김상욱(29)은 “우리보다 체격이 큰 서양 선수들을 3피리어드까지 괴롭힐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1년 전 벤치프레스(100kg)를 전혀 들어올리지 못했던 그는 11주 훈련이 끝났을 때 8회를 들어올리는 등 상체 근력이 크게 향상됐다. 조민호(30)는 ‘체력 훈련 모범생’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체력 훈련을 거치며 벤치프레스 횟수가 10회 늘었고, 하체 파워를 측정하는 수직 점프도 12.8cm 증가했다.

오후 훈련에서는 허리에 벨트를 맨 선수가 동료가 잡아당기는 힘을 뚫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등 스피드와 민첩성을 키우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오후 훈련에서는 허리에 벨트를 맨 선수가 동료가 잡아당기는 힘을 뚫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등 스피드와 민첩성을 키우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시간 반에 걸친 오전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오후에는 핸드볼 경기장에서 체력 훈련을 이어갔다. 4kg짜리 메디신볼을 반복적으로 던지는 훈련과 셔틀런(왕복달리기)의 일종인 왕복 훈련을 하는 선수들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이날 선수들은 1분 안에 10m, 20m, 30m를 순차적으로 전력 질주한 뒤에 걸어서 돌아오는 훈련을 5세트 반복했다. 선수들은 1세트를 마칠 때마다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목표치를 완수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역사적인 첫 승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이라도 참아내겠다는 각오다.

체력 훈련을 마친 뒤 대표팀 선수들은 빙판에 올라 실전 감각을 다지며 하루 훈련 일정을 마무리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체력 훈련을 마친 뒤 대표팀 선수들은 빙판에 올라 실전 감각을 다지며 하루 훈련 일정을 마무리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뒤부터 빙상 훈련(약 1시간)도 병행하고 있다. 지상 체력 훈련을 실시한 지 7주 만에 얼음판에 서는 것이다. 하루 두 차례 체력 훈련으로 지친 선수들이지만 빙판에 들어설 때는 웃음을 되찾았다. 이날 선수들은 실전 감각 회복을 위해 슈팅 훈련과 미니 게임을 했다. 조민호는 “오랜만에 빙상 훈련을 하다보니 넘어지는 선수들도 있었다”면서 “지상 체력 훈련보다는 빙상 훈련이 재밌는 것 같다. 땅보다 얼음 위가 편하다”며 웃었다.

백 감독은 올해 체력 훈련에 앞서 선수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성과(1부 리그 승격)를 기적이라고 한다. 우리가 흘린 땀과 노력, 결과에 대한 믿음을 이어간다면 올림픽에서 더 큰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백지선호’는 평창 올림픽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꾸며 지옥을 통과하고 있다. 체력을 다진 대표팀은 28일부터 해외 전지훈련(러시아, 체코)에 들어간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정성규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아이스하키 백지선호#한국 남자 아이스하키#여름 체력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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