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다양성은 곧 생존의 조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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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다양성이 왜 중요한가요?” 학기말 세미나 자유토론 시간에 한 학생이 불쑥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다양성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자신도 그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다양성이 중요함을 여러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는 그것이 ‘생존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중요한 겁니다. 일정한 생명 집단을 이루는 개체들이 모두 동일하다면 내부적 갈등의 문제는 없겠지요. 하지만 환경 변화나 다른 집단의 공격 같은 외부의 간섭과 침투에 매우 취약합니다. 치명적이기까지 합니다. 그에 대한 반응이 획일적이기 때문입니다. 영생(永生)을 할 수 있는 생명체 집단이라 할지라도 개체가 모두 동일하다면 치명적인 요소가 하나만 침투해도 몰살하겠지요.

외연을 갖지 않은 집단은 없습니다. 무한한 우주 전체를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삼을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간섭과 침투는 상존하며 이에 반응해야 합니다. 각기 다른 개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함으로써 살아남기도 하고 피해를 입기도 하며 소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양성을 확보한 집단은 존속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의 정도와 생존 가능성은 비례합니다.

이는 현대 농업과 축산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택된 종(種)에만 의지하는 획일화된 농업은 한 가지 병충해에도 전체 수확이 위협 받습니다.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동물 전염병이 자연 상태의 개체보다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에게 쉽게 확산되는 것도 그 다양성의 정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의 결론에서 문학적으로 표현했듯이 자연은 “너무도 아름답고 너무도 경이로운 무수히 다양한 형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다양하며, 다양성은 자연을 존재하게 하는 원리입니다. 동양사상에서는 ‘자연과 동화하는 삶’을 강조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런 삶은 자연의 다양성을 깨닫고 그 이치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시대를 앞서갔던 16세기의 사상가 조르다노 브루노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물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자연의 이치에 맞추어 살기를 원한다면 세상 만물에 다양성의 옷을 입혀라!”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문명화 과정에서 사물을 구분해서 범주를 정하고 일정한 방식으로 동식물을 사육하고 경작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의 근원적 다양성에 대해 망각의 경험 또한 해왔습니다. 이런 경험이 종종 일상에서도 자연의 다양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무심하게 바라본 얼룩말의 무늬는 모두 똑같아 보이고, 하늘의 별들은 모두 오각형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초원의 얼룩말들은 다 똑같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생명의 원리를 알 수 없으며, “하늘의 별들은 다 똑같아!”라고 하는 사람은 우주의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생물 다양성이 자연에 필요한 것처럼 문화 다양성은 인류에 필요합니다. 다양성은 생물·물리적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세계에도 활력을 불어넣으며 교류, 혁신, 창조성의 근원이 됩니다. 가장 큰 다양성을 지닌 집단이 가장 안정적이고 발전적입니다. 다양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모색하고 타자와 협력하는 일은 인류가 진화하고 개인이 발전하는 동기가 되어 왔습니다. 다양한 환경은 더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뜻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선택의 기회 또한 더 많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다양성#생명#찰스 다윈#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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