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대의 取中珍談]벼랑에 선 宋襄之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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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논설위원
하종대 논설위원
미국이 한국에서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시킨 1992년, 남북의 1970년대 고교 물리 교과서를 분석한 김채옥 당시 한양대 교수(현 명예교수)는 깜짝 놀랐다. 북한의 ‘고급물리’와 남한의 ‘물리Ⅱ’를 비교 분석한 결과 북한의 현대물리 분야 분량이 우리보다 38%나 많았다. 특히 원자핵의 질량·구조 및 결합에너지, 우주선과 소립자 등은 북한 교과서에만 실려 있었다. 한국물리학회 회장을 지낸 김 교수는 1990년대부터 이뤄진 북한의 집중적인 핵개발은 20∼30년 전부터 실시한 교육투자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北에선 50년 전부터 核교육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착수한 것도 50여 년 전인 1960년대다. 소련에서 스커드 미사일을 얻지 못하자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을 치르던 이집트에 전투기 부대를 파병해 주고 소련이 이집트에 제공한 스커드 미사일 및 발사차량, 운용교범을 넘겨받았다. 이 미사일을 분해해 연구한 끝에 1980년 첫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 북한이 얼마나 집념을 갖고 미사일 개발에 매달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1990년대 초 핵 연구 인력이 기반을 갖추자 북한은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까지 5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제조에 성공한 것은 물론이고 소형화, 다종화, 경량화까지 마쳤다. 전문가들은 노동미사일엔 이미 핵탄두를 장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구해 온 핵 강성대국 반열에 진입한 셈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패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은 핑계다. 지난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400억 달러로 남한의 2.7% 정도다. 재래식 무기를 현대화해 남한과 대적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남한의 중급 전투기 F-16만으로도 북한의 최고급 미그-29기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결국 돈 드는 재래식 무기 대신 값싼 핵무기로 정권의 안위를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다.

궁금한 것은 선제타격을 통한 북핵 제거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한미가 선제타격을 위해 은밀히 점찍어둔 북의 목표물은 750개 정도다. 이는 언제든지 타격이 가능하도록 24시간 감시 중이다. 우려하는 건 남한이 입게 될 피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선제타격 시 8000문에 이르는 휴전선 부근의 포만으로도 한 시간 내에 군인과 시민 3만3000명이 숨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개전 첫날에만 30만 명이 죽을 수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북한의 핵 반격을 막지 못하면 한 방에 100만 명이 숨질 수도 있다.

선제타격 기회 사라져 간다

무력을 통한 해결을 원치 않는다면 공포의 핵 균형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의 핵무장이나 한반도 전술핵 배치는 아직 미국도 반대한다. 미국은 선제타격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20여 기로 추정되는 북한의 핵무기가 매년 6, 7개씩 늘어나는 상황에서 선제타격의 골든타임도 사라져 간다. 춘추시대 송나라 양공(襄公)은 “정정당당하게 싸우자”며 초나라 군사가 물을 건너고 전열을 가다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국 대패해 사가(史家)들의 비웃음만 샀다. 북한이 핵개발을 거의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준 우리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을 후일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하종대 논설위원 orionha@donga.com
#김채옥#북한 핵 개발#한미 선제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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