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보란듯… 트럼프, 나치저항 광장서 연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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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참석 앞서 폴란드 방문
美에 각세운 獨 어두운 과거 부각… 폴란드 정부, 수천명 군중 동원
美, 동유럽에 LNG 수출 확대… 협력 강화해 러 영향력 견제

“우리의 국경은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로부터 굳게 닫혀 있을 것이다.”

6일 낮 폴란드 바르샤바 크라신스키 광장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서양 문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며 테러와 난민으로부터의 국경 보호를 강조했다.

폴란드는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연합(EU)의 난민 할당 정책에 반대하며 난민 수용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이슬람권 7개국 출신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비판하며 폴란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광장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려는 시민 수천 명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 지방에서 동원된 사람들이다. 폴란드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정부는 국회의원들에게 지역구에서 50명씩 버스로 동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순방 첫 일정으로 폴란드를 택한 배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으로부터 환대받는 사진이 필요했고, EU와 각을 세우는 폴란드 정부도 세계에서 고립무원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이벤트가 필요했다”고 전했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한 크라신스키 광장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두 달 동안 격렬하게 저항한 폴란드인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는 곳이다. 최근 “미국 동맹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독일의 어두운 역사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발트해, 흑해, 아드리아해 연안의 중부와 동부 유럽 12개국 포럼에도 참석했다. 동유럽 전문가인 영국 서식스대 알렉스 슈체르비아크 교수는 “이 포럼은 프랑스-독일이 지배하는 EU에 대항하기 위한 지역 모임”이라며 “미국이 EU에 저항하는 국가들과도 함께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폴란드는 독일, 프랑스가 주도하는 난민 수용,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반대하며 EU 내 야당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대해서도 각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지역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후 동유럽 국가들의 안보 위협이 커지면서 불과 300km 떨어진 폴란드에는 미군 중심의 나토군 900명이 배치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폴란드는 확고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오트르 빌체크 주미 폴란드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취임 후 처음 만나기 직전에 폴란드를 방문하는 건 그들에게 강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러 정상은 7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양자회담을 한다.

미국과 폴란드는 또 동유럽에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확대하기로 했다. 동유럽은 불가피하게 러시아에 가스나 에너지 수입을 의존해왔다. 미국으로선 돈도 벌고 러시아의 영향력도 약화시키는 일석이조다.

이런 행보는 ‘러시아 스캔들’로 인한 수세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이란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지난해 미 대선에 간섭했는지는 아무도 확실한 것을 모른다”고 말했다.

폴란드와의 나토 동맹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독일을 향한 방위비 분담 압박 의미도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폴란드는 나토의 방위비 지출 기준(국내총생산의 2% 이상)을 충족하는 몇 안 되는 나라”라며 칭찬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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