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EU 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 한국, 유럽수출 경쟁력 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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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발효… 세계무역 37% 경제권

일본과 유럽연합(EU)이 6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경제 규모 2위인 EU와 4위인 일본의 EPA 체결로 세계 무역 규모의 37%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이 탄생하게 됐다. 2011년 먼저 EU와 FTA를 맺고 현지 시장을 공략해온 한국 산업계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의 주력 수출품 중 하나인 자동차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낮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EPA 협상이 큰 틀에서 타결됐음을 선언했다. 일본과 체결하는 이번 협정은 EU가 지금까지 맺은 FTA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일본으로서도 양자협정으로는 가장 크다. 양측은 세부항목에 대한 협의를 계속해 연내 최종 타결하고, 2019년에 발효시키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선언 후 기자들과 만나 “일본과 EU가 자유무역의 깃발을 높이 치켜드는 강한 정치적 의사를 보였다. 세계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협정이 발효되면 일본과 EU의 전체 교역 품목 중 약 95%의 관세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협정 체결로 수출이 증가하면서 EU는 0.76%, 일본은 1% 이상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지막까지 논란이 됐던 일본 자동차 수입 관세(현재 10%)와 관련해 양측은 EPA 발효 7년 후에 완전히 없애기로 합의했다. 일본 측은 당초 EU가 한국과의 FTA에서 5년 내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만큼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EU는 국내 자동차 산업 보호를 이유로 10년을 주장해왔다.

EU가 일본에 수출하는 품목 중에서는 치즈를 두고 막판까지 협상이 치열하게 이뤄졌다. 결국 양측은 연성치즈의 경우 저관세 물량을 별도로 마련하는 대신 16년째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와인은 양쪽 모두에서 즉시 관세가 사라진다.

‘FTA 후진국’으로 불리던 일본은 2012년 말 아베 총리 집권 이후 “한국을 따라잡자”며 동시다발적인 FTA 협상에 돌입했다. 2013년에만 EU와의 EPA를 비롯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한중일 FTA 등 ‘메가 FTA 협상’을 한꺼번에 시작했다. 이 중 가장 중점을 뒀던 TPP는 2015년 10월 타결됐지만 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탈퇴를 선언해 발효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EU와 일본은 7, 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서둘렀다. 보호무역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항해 ‘자유무역의 가치’를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과 영국이 문을 닫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은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화는 죽지 않았고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포퓰리스트들의 반감 역시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가 최근 도쿄도의원 선거 참패 후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어 외교통상 분야에서 성과를 내 지지율을 높이겠다는 노림수가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1년 EU와 FTA를 체결한 한국으로선 반가워할 수 없는 처지다. 관세 철폐로 일본 상품 가격이 내려가면 이와 경쟁하는 한국 수출 품목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분야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대(對)EU 자동차 수출은 2009년 35만 대에서 지난해 40만 대로 증가했다. 현지 생산도 늘어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현지 생산이 2009년 대비 3배로 늘었다. 반면 일본 자동차 수출은 같은 기간 70만 대에서 60만 대로 줄었다. 산케이신문은 “일본 업체들에는 (한국 자동차 회사들에) 반격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대EU 수출 시 상당수 품목에서 즉시 관세가 철폐되는 가전제품(TV는 5년) 분야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일본 내에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일본상공회의소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 회장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환영했다. 반면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JA전중)의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나카야 도루(中家徹) 씨는 “일본의 농업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며 반발했다. EU 내부에선 치즈, 파스타, 초콜릿을 포함해 거의 모든 농산품의 관세를 없앴다는 점에서 농업과 식품 산업에서 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일본에 진출하려는 미국 농축산 업계나 유럽에 진출하려는 미국 자동차 업계는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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