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反이민 조치에… 꿈 빼앗긴 아프간 소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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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로봇대회 참가 신청했지만… 美국무부 비자발급 거부해 좌절
주최측 “영상통화로 참관 배려”

아프가니스탄 서부 헤라트에서 자란 14세 소녀 파테마 카데리안은 이달 16∼1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로봇경연대회에 아프간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카데리안을 포함한 소녀 6명으로 구성된 아프간팀은 대회를 앞두고 자신들이 만든 로봇 성능을 시험하고 또 시험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미국 땅을 밟아 160여 개국에서 온 로봇들을 상대로 자웅을 겨루겠다는 소녀의 꿈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고 로이터통신이 4일 보도했다. 미 국무부가 이들이 주카불 미국대사관을 통해 신청한 일주일짜리 상용비자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90일간 미국 입국 금지 대상으로 규정했던 이슬람권 6개국에 속한 이란과 수단팀뿐 아니라 시리아 난민으로 구성된 시리아팀도 모두 입국 비자를 발급받았다.

아프간팀 소녀들의 입국 비자가 거절된 사유는 미국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국이 테러단체로 규정한 탈레반이 활개 치는 아프간 출신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추정된다.

카데리안은 미국이 2001년 탈레반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한 지 3년 후에 태어나 탈레반과는 무관한 환경에서 자랐다. 여성을 억압하는 탈레반 정권을 미국이 퇴출시켰기에 14세 소녀가 로봇을 개발할 만큼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지만,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미국이 소녀의 입국을 거부한 것은 역설적이다. 아프간 팀원인 리다 아지지(17)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데 우리만 못 하는 것은 아프간 국민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라며 분개했다.

사연을 접한 대회 주최 측은 소녀들이 스카이프 영상통화를 통해 로봇경연대회에 참가한 자신들의 로봇들이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밝혔다. 소녀들과 달리 로봇들은 미국 내 반입 허가를 받았다. 카데리안은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최선을 다해 만든 로봇이 다른 나라 로봇들과 당당히 경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반이민#트럼프#아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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