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의 뉴스룸]잡화의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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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르면 항상 기념품을 사오는 편이다. 전시 자체보다 기념품 쇼핑이 더 즐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왕희지 서체 비닐파일이나 모네 그림이 그려진 마우스 패드 같은 것들을 신중히 고르다 보면, 전시실에서 받은 여러 가지 감흥을 저렴한 가격의 그 소품에 압축시켜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캐릭터숍이나 잡화점에서 자질구레한 물건을 사 모으는 즐거움이 이에 못지않다. 생활용품을 사는 것일 뿐인데 기념품 숍에 들른 것처럼 들뜬다. 워낙 상품 종류가 다양해진 데다 가격도 저렴해 소비의 즐거움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판다 모양 세탁바구니와 화분, 장식용 리본과 여행용 목베개, 휴대용 아로마 오일. 잔뜩 담았는데도 1만 원 남짓밖에 하지 않는다. 꿀단지 숨겨놓은 것처럼 잡화점에 자꾸 가게 되는 이유다.

잡화 소비는 최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푼돈을 마구 쓴다는 점에서 ‘탕진잼’(탕진하는 재미)이라고도 불리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다고 ‘감성 값’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딱히 필요 없는 걸 소비한다는 점에서 ‘예쁜 쓰레기’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은 작은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다. 일상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내 손끝에서 잘 꾸려지는 듯한 느낌과 아기자기한 위안을 준다. 지속적인 소비를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감정이다.

잡화 소비가 대세가 되며 요즘 잡화점들은 다이소나 플라잉타이거, 코즈니처럼 브랜드화된 대규모 생활용품 매장으로 진화해 있다. 싸구려 제품을 망라해놓은 예전의 천원숍이 아니라, 유행하는 디자인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해진 제품을 판다. 판매품목만 수만 개. 거의 모든 잡스러운 것들이 다 있다. 가용범위 내에서 소비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려다 보니, 갈 수 있는 곳은 결국 이런 곳들이 된다. 싸고 다양해서 충동적 소비도 양해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문을 여는 대형 쇼핑몰들도 소위 ‘라이프스타일 숍’으로 명명한 잡화 매장들을 필수적으로 유치하거나 강화하는 추세다. 그만큼 집객 효과가 높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경기 광명 이케아에 주말마다 미어터지는 인파에는 1000원대의 그릇과 몇천 원대 쿠션 같은 전략적 잡화 상품이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응 차원에서 국내 가구업체들도 자질구레한 생활용품 판매를 대폭 늘리고 있다. 장사가 된다 싶으니 의류, 화장품 업체들도 이 시장에 뛰어든다. 그야말로 잡화의 전성시대다.

안 그래도 사는 건 팍팍한데, 불황까지 겹치니 자잘한 소비로 소박한 몰입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수첩에 붙일 홀로그램 스티커나 캐릭터 칫솔걸이를 사면서 오늘 하루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는 느낌과 위안을 받는 것이다. 재밌는 건 덕분에 잡화시장 규모는 10조 원으로까지 성장했고 5년 뒤엔 18조 원으로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 작고 소소한 소비들이 모여서, 어느 때보다 거대한 잡화의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teller@donga.com
#기념품 쇼핑#잡화 소비#라이프스타일 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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