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남지연 “어린 새 후배들의 엄니가 내 역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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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만류한 IBK기업은행서 ‘FA 보상선수’ 지명돼 갑자기 흥국생명行

프로배구 여자부 IBK기업은행의 리베로 남지연(34·사진)은 2015∼2016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생각이었다.

출산 계획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구단은 ‘한 시즌 더’를 제안했다.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기쁨과 함께 남지연은 그렇게 계속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그러나 구단과 남지연의 동행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IBK기업은행은 흥국생명 출신 FA 센터 김수지를 영입하면서 남지연을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보호선수로 최대 5명을 묶을 수 있는 규정 아래서 IBK기업은행으로선 불가피한 판단이었다. 그 결과 남지연은 자신을 보상선수로 낙점한 흥국생명으로 이적하게 됐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팀을 떠나면서 남지연은 물론이고 동료 선수들 또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남지연과 함께 대표팀 생활을 했던 김연경은 인스타그램에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존중해주세요”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3일 서울에서 만난 남지연은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빨리 마음 정리를 했다. 흥국생명 숙소에 들어올 때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나’란 걱정만 했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현역 시절 보상선수로 삼성화재에서 현대캐피탈로 이적)의 이름을 꺼냈다. “(현대건설의) 한유미 언니와의 통화에서 ‘어디서 은퇴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은퇴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최 감독님의 말씀을 전해 들었어요. 제가 흥국생명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죠.”

프로에서 내내 리베로로 뛰었던 남지연은 빛나는 주연보다 조연 역할에 익숙했다.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나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8강) 또한 그랬다. “평생을 일개미처럼 꾸준히 정직하게 배구를 해왔던 것 같아요. 농땡이 잘 안 부리고 기본을 지키면서 왔다고 생각해요.”

그런 남지연에게도 이번 이적만큼은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IBK기업은행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였다면 흥국생명에서는 후배들이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어린 선수가 많은 흥국생명에 합류한 남지연은 지난 한 달간 후배들과 숙소생활을 함께 하면서 ‘엄니(엄마+언니)’라는 새로운 별명도 얻었다.

공교롭게도 남지연은 10월 막이 오르는 2016∼2017시즌 친정팀 IBK기업은행과의 개막전을 통해 흥국생명 소속으로 데뷔전을 치른다. 장소 또한 지난 시즌까지 안방이던 화성체육관이다. 인터뷰 막바지에 “애초 계획대로 올 시즌 뒤 은퇴할 것이냐”고 묻자 남지연은 “또 모르는 일이다. 마흔까지 하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라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무대를 향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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