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상실의 고통을 따라 걷는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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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김애란 지음/272쪽·1만3000원·문학동네

때 이른 폭염이 대지를 달구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계절은 겨울에 남아 있는 이들이 있다. 사고로 아이나, 남편을 잃은 이들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눈보라가 치고 있을 것이다.

책은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저자의 신작 소설집이다. 통상 소설집에 실린 소설 한 편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삼지만 저자는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일부러 따로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자식이 숨진 부부는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입동’).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겨진 이들을 구원하는 건 또 다른 남겨진 이의 공감이다.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자신까지 목숨을 잃은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는 제자의 누나가 보낸 감사의 편지를 받는다(‘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상실의 윤리를 탐구하는 저자의 필봉은 그저 평면적인 도덕을 강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뒤의 풍경만큼이나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이들의 내면을 파고든다. 오래 사귄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고하려는 여성은 오래전부터 남자 친구가 큰 잘못을 저질러주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는다(‘건너편’). 유기견을 거둬 동생처럼 키운 가난한 어린이는 노쇠해 병고에 시달리는 개를 ‘안락사’시킬 돈을 모으지만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휴대전화 케이스를 사는 데 헐어 쓴다(‘노찬성과 에반’).

책에 실린 7편의 소설 중 ‘사라지는 언어들의 영(靈)’이라는 독특한 화자를 내세운 ‘침묵의 미래’(201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결국 용서에 대한 이야기일 게다. “없던 일이 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은 나중에 어떻게 되나. 그런 건 모두 어디로 가나.”(‘노찬성과 에반’) 인간의 기도는 ‘그저 한번 봐 달라’는 것일 뿐이다. 나중에 ‘세월호 문학’이란 게 생겨났다고 평가된다면 이 책은 그중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바깥은 여름#김애란#폭염#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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