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질허가 노래한 로렐라이 언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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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질허
프리드리히 질허
한때 독일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녀 ‘독일 관광’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로렐라이 언덕이 순 사기라며?”라고 묻는 분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요정이 뱃사람을 홀렸다는 유명한 언덕인데, 막상 가보면 볼 것도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가?

제 느낌은 반반입니다. 가보면 주변에 비해 특별한 것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높은 언덕에서 굽이진 라인강을 바라보는 느낌은 각별하죠. ‘언덕’ 하나만 집중해서 볼 것이 아니라 중세시대 성들을 비롯한 주변 풍경까지 여유롭게 즐긴다면 로렐라이 ‘일대’는 분명 평생 한 번, 가보아야 할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로렐라이 언덕이 유명해진 것은 작곡가 프리드리히 질허(1789∼1860)가 작곡한 노래 ‘로렐라이’ 덕분입니다. 그는 19세기 초중반 독일에서 유행한 합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여러 노래를 지었을 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 애창되는 노래들을 악보로 정리했죠. 예전 이 코너에서 ‘깊은 산속 옹달샘’이란 노래가 질허가 채보한 민요이며, 슈베르트가 이 선율에서 ‘미완성교향곡’ 2악장 주선율의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질허의 노래 중 한국에서 널리 애창되는 노래가 또 있습니다. “노래는 즐겁구나, 산 너머 길…”이라는 가사로 익숙한 ‘노래는 즐겁다’입니다. 소박하면서도 유쾌한 느낌의 선율도 인상 깊죠. 그런데 이 노래의 원래 가사는 즐거운 노래가 아닙니다. “내가 이 도시에서 떠나야 하나. 그대는 남아 있고?”라는 쓸쓸한 이별의 노래입니다. 선율의 느낌만 보면 우리말 가사가 더 들어맞는 것도 같습니다.

질허는 익숙한 노래를 합창곡으로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슈베르트 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겨울여행)에 나오는 ‘보리수’도 원곡은 ‘서있는 보리수’의 ‘수’ 부분이 음계의 주음(계이름 도)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죠. 하지만 이 부분이 계이름 ‘미’로 올라가는 걸로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질허가 합창곡으로 편곡하면서 살짝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27일은 독일 합창음악의 큰 인물 질허의 228번째 생일입니다. ‘로렐라이’나 ‘노래는 즐겁다’를 흥얼거리면서 그의 이름을 기억해볼까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로렐라이#프리드리히 질허#슈베르트 가곡집#겨울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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