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일자리정책, 결국 노사정 대타협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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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신념에 사로잡힌 채 노동시장 현실 반영하지 못한 일자리위원회의 100일 플랜
민간부문 경쟁력 키우지 않으면 일자리-소득격차 해소 불가능
근본 문제 확인하고 기본방향과 철학 제시하며 노사정 대타협 이끌어내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자리위원회가 6월 1일 ‘일자리 100일 플랜’을 제시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13대 과제에 이르는 일자리 100일 플랜은 일자리의 양을 늘리기 위해 공공부문의 채용 확대, 청년구직난 해소 방안,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등을 중요 과제로 선정하였다. 또한 일자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1만 원의 조기 실현을 내걸었다. 일자리위원회가 공언한 대로 주로 단기적 과제를 중심으로 개별 정책과제를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 제로’는 ‘비정규직 해고’로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저임금 1만 원은 소상공인 파산, 일자리 축소로 연결될 것이라고 자영업자의 걱정이 태산이다. 공공부문 채용 확대는 장기적으로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연금재정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근로시간 단축은 저임금 근로자가 다수 포진하고 구인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시름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결국 일자리위원회가 만들어낸 100일 플랜은 노동시장의 디테일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선거에서 제시된 공약을 지키겠다는 정치적 신념이 만들어낸 무리한 시도가 될 수 있다. 일자리위원회는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일자리정책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문재인 정부가 임기 중 실현하고자 하는 일자리정책의 철학과 기본 방향을 설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민간 대표와 정부 대표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일자리정책의 큰 방향을 마련하고 국민들과 그에 관한 기본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일자리위원회가 해야 할 임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자리위원회는 우리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다음의 세 가지 기본 문제를 확인하고 그 핵심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첫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어 있는 우리 노동시장 내부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양보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이해와 타협이 절실히 요청된다. 둘째, 대·중소기업 근로조건 격차 문제이다.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해소하고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핵심 과제는 중소기업의 일자리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서 확인되었듯이 300인 이상 기업 근로자에 비하여 50% 수준의 급여를 받는 5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소득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해법을 만들어내야 한다. 셋째, 디지털자본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을 조화시키는 문제이다. 이미 산업 현장에서는 자동화,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이용한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경쟁력 있는 스마트기업, 디지털기업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장의 요구와 디지털시대의 일자리에 필요한 보호와 규칙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난 산업화시대와 금융위기 그리고 글로벌 경쟁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성과와 함께 부작용도 경험했다. 그 부작용의 대부분은 우리 근로자의 고용불안과 소득격차에 집중되어 있다. 디지털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향후 노동정책의 방향은 그동안 간과되었던 이른바 ‘노동 존중’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노동 존중은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서 비롯된다. 동시에 노동시장은 노동계와 경영계가 협력하고 경쟁하는 곳이다. 민간부문의 경쟁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일자리 확대와 소득격차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가 공정한 중재자로서 기업의 고충과 걱정도 함께 경청해야 하는 이유이다.

결국 노동시장의 공정성과 유연성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일자리정책의 기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전략이자 유일한 해법이다. 독일 연방노동복지부 장관인 사민당 소속 안드레아 날레스는 2016년 6월 독일 유력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과의 인터뷰에서, 디지털화 등 독일이 당면한 새로운 노동시장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와 노사 자율에 기반한 강행 규정의 유연화를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적 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앞에 놓인 노동시장의 기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노정 타협이 아니라 노사정의 대화와 타협이 핵심 과제이다. 새로 임명될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러한 노사정 대타협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 존중의 가치를 실천할 의지와 함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의 고충을 경청하면서 노사와 손을 맞잡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협상가로서의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요청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자리#일자리위원회#일자리 100일 플랜#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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