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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이 벗겨진, 수집된 생명체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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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이 벗겨진, 수집된 생명체를 떠올리다

김지영기자 입력 2017-06-20 03:00수정 2017-06-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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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동물원’전 《‘미술관 동물원’이라는 전시회 제목은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을 비튼 것일 테지만, 남녀의 아기자기한 사랑을 그린 20년 전 영화와 달리 2017년의 전시회는 분위기가 무겁다. 전시에는 동물을 소재로 삼은 다양한 작품들이 나와 있는데, 관람객은 실제 동물원에 간 듯 즐거운 기분을 느끼기보다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시민을 교육한다는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이 장소가 실은 생명체를 수집해 가두고 야생을 벗겨내는 잔혹한 곳이기 때문이다.》
 
박찬용 작가의 ‘우상’. 작가는 동물을 박제하는 것을 인간의 이기적인 폭력의 발현으로 본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작품들에 이런 주제의식이 깃들어 있다. 박찬용 작가의 ‘우상’은 높이 솟은 뿔의 수소와 숫양의 박제 두상을 본떠 만든 조각이다. 여기에는 박제라는 행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겼다. 인간이 동물을 정복했다는 가시적 증거인 박제는 인간에게 보기 좋은 형태로 동물을 굳혀서 벽에 걸기 좋은 장식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동헌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일회용 검은 비닐봉투를 주재료로 삼아 동물을 만들어낸다. ‘Plastic Bag Dog’는 개의 등에서 비닐봉투가 자라나고, ‘Plastic Bag Orangutan’은 비닐봉투로 거대한 오랑우탄의 얼굴을 만들었다. 산업사회의 폐기물인 비닐봉투와 동물을 합체한 이 조각들은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비유로 보여준다. 갇힌 채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로 사용되는 동물들이, 소비되고 버려지는 비닐봉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선환 작가의 ‘데드라인’은 작은 동물 모양 클레이들을 벽에 띠처럼 걸어놓은 작품이다. 예쁜 색깔의 클레이 인형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로드킬을 당한 새, 닭이 되지 못한 병아리 등 내장이 드러나 보이는 동물들이 적잖아 섬뜩하게 느껴진다.

최민건 작가의 ‘잃어버린 시간’ 연작은 개의 얼굴을 확대해 그린 그림이다. 개들의 순한 눈에 눈길이 가는 이 작품들을 보다 보면 문득 관객이 개를 보는 게 아니라 개가 관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의 저서 ‘본다는 것의 의미’와 맞닿는다. 버거는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 동물들이 일반 가정에서 애완동물로 흡수되거나 동물원에 갇혀 있음을 이 책에서 일깨운다. 이런 시대에 동물을 구경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발달 등 사회·역사적 패러다임의 변화와 맞물린 것이다. 최 작가는 이렇게 구경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거꾸로 관람객을 응시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동물을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이선환 작가의 ‘데드라인’. 죽음에 이른 동물들을 클레이로 표현한 작품이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동물을 사육하고 도살하는데, 이것이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이기이자 착취라고 작가는 비판한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동물은 없고 조련기구만 남은 노충현 작가의 ‘연극이 끝난 후’와 ‘두 개의 공’ 등 회화 작품, 강아지의 오줌을 표현한 노란 전선들이 엉킨 장면이 인상적인 손현욱 작가의 설치 작품 ‘Connection’ 등에서도 인간의 탐욕과 야만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미술관은 “여름방학 때 미술관을 들른 어린이들도 함께 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밝혔지만, 어린이들보다는 어른에게 맞춤한 전시다. 산업화의 역사를 투영하는 동시에 인간 욕망의 상징이 돼온 동물원에 대해 성찰하면서, 새로운 세기에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공생할는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미술관 동물원#미술관 옆 동물원#박찬용#우상#이선환#데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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