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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기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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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기우제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입력 2017-06-20 03:00수정 2017-06-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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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끝내 병이 든다면 또한 산천 신들의 부끄러움이니
바로 지금 사방 천 리에 시원스레 비가 쏟아지게 하소서
稼穡卒痒亦神之恥윣其今兮켚方千里
(가색졸양 역신지치 태기금혜 패방천리)

―조경 ‘용주유고(龍洲遺稿)’》

댐이나 저수지 등 수리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농사의 풍흉을 거의 하늘에 내맡겼다. 파종과 모내기를 위해서는 적절히 비가 내려야 하고, 수확을 앞두고서는 해가 잘 비춰주어야 한다. 여러 저수시설과 관개시설을 잘 갖추었다고 하는 요즘에도 대자연의 운행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하늘만 바라보아야 했던 옛날에는 오죽하였겠는가.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는 거의 연례행사처럼 진행되었다. 비가 계속 오지 않으면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행해져 열 차례 이상 거행되기도 하였고, 종묘나 사직 등 어디 한 곳에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삼각산(三角山), 백악산(白嶽山), 목멱산(木覓山), 한강(漢江), 용산강(龍山江) 등 여러 산천에서 두루 행해졌고 신농씨(神農氏), 후직씨(后稷氏), 바람의 신, 구름의 신, 천둥의 신 등 온갖 신들에게도 각기 비를 기원하며 기우제를 지냈다. 심지어 무녀들을 궁궐로 불러들여 경회루 옆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인간의 기도가 어찌 비로 연결되겠는가마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문의 내용은 대체로 정성스럽게 마련한 제수를 흠향하여 간절한 소망에 부응해 달라는 간청이지만, 위의 글처럼 인간을 보살펴야 하는 신의 의무를 저버리지 말라는 강력한 의사전달의 말도 있다.

중요 정책에서 농촌은 배제되는 인위적인 재앙을 거치며 농가는 더욱 피폐해졌고, 또 연중행사처럼 다가오는 가뭄,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해 늘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흉년이 들면 흉년이라 망하고, 풍년이 들어도 농작물 값 폭락으로 또 망하는 구조 속에 빚만 늘어가는 농심이 올해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또 타들어가고 있다. 국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결하라는 명령을 여기에도 적용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은 비를 내리소서.

조경(趙絅·1586∼1669)의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용주(龍洲)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는데, 청나라가 척화를 주장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여 백마성(白馬城)에 안치되기도 하였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조경#용주유고#기우제#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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