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한반도 사는 작가, 사회적 속박서 못벗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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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 자전 ‘수인’ 출간
“화살처럼 달려오느라 편한 적 없어… 주변에 준 상처 뒤늦게 성찰”

소설가 황석영 씨는 “내 작품과 삶을 엇비슷하게는 합치시키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잠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문학동네 제공
소설가 황석영 씨는 “내 작품과 삶을 엇비슷하게는 합치시키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잠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문학동네 제공
“한반도에 사는 작가는 창작과 사회적인 표현의 자유, 이런 자유를 갈망하지만 또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역사의 엄처시하(嚴妻侍下·엄한 아내를 모시고 사는 남편)’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늘 도사리고 있어요. ‘책임져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그런 것 자체가 작가에게 억압이죠. 그런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작가에게 그런 게 가능할까요?”

소설가 황석영 씨(74)가 10일 자전(自傳·자서전) ‘수인’(전 2권·문학동네)의 출간을 앞두고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수인번호 ‘83’. 이제 황석영이라는 내 이름은 사라졌다. … 정치범은 가슴에 꿰맨 번호표 아래 삼각형의 붉은 표지를 달게 되어 있었다.”(‘수인’에서)

책 앞부분은 작가가 방북과 뒤이은 망명생활을 마치고 1993년 귀국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이야기에서 1947년 어머니의 등에 업혀 월남하던 때로 건너뛴다. 책은 이처럼 작가가 감옥에서 보낸 5년과 유년부터 망명까지의 생애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황 씨는 “아마 나는 말년까지 속박 속에서 살다 죽을 것”이라며 “그래서 책은 감옥을 현재에 놓고 들락날락하면서 천을 짜듯 시간을 얽어 놨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시대는 내가 감옥에 갇혔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며 “책 제목을 바꾸면 ‘자유란 무엇인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학은 내 집이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글쓰기에 얽힌 절박한 사연도 얘기했다. “베트남전 참전 당시 청룡부대가 철수하는 마지막 방어 작전에 투입돼 교통로를 지키며 며칠을 보냈습니다. 처음으로 적과 마주 대하고 총을 쏘는 전투에 직면했지요. 긴 밤이었어요. 밤새 ‘살려주세요, 여기서 죽지 않으면 반드시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황 씨는 “출감하고 ‘이제 황석영은 글을 못 쓸 것’이라고 문단에 소문이 났지만 나는 노름꾼이 밤새 노름하다 밑천을 다 털어먹고 새벽 ‘끗발’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평온했다”고 회고했다.

“옆을 돌아보지 않고 한길로 화살처럼 쭉 달려오기만 했습니다. 한 달도 편한 적이 없었어요. 나 자신도 상처를 입었지만 주변에도 얼마나 상처를 남겼는지 글을 쓰면서 뒤늦게 성찰했습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자서전 수인#황석영 자서전#수인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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