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과 일본, 국경도 여권검사도 없는 ‘작은 EU’처럼 됐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암과 싸우며 8년만에 새 앨범 ‘async’ 낸 日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그가 1977년 결성한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는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세계 전자음악의 선구자로 통한다. 그에게 인간이 창작하지 않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묻자 “빅뱅으로 생긴 중력파”라고 답했다. “그게 최초의 소리니까.” 사카모토 류이치 제공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 그가 1977년 결성한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는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세계 전자음악의 선구자로 통한다. 그에게 인간이 창작하지 않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묻자 “빅뱅으로 생긴 중력파”라고 답했다. “그게 최초의 소리니까.” 사카모토 류이치 제공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65)는 세계적 거장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1987년)로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40여 년간 전자음악부터 시청각 설치 작품, 노이즈-아방가르드 음악까지 넘나들며 예술의 심연에 접근했다.

환경·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일본의 대표적 지성이기도 하다. 2014년 원전 폐기 요구 집회, 2015년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안보법안 폐기 및 아베 정권 퇴진 집회’(12만 명 참가)에서 대중 연설을 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백남준(1932∼2006)과 교류했고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영화 ‘분노’(2016년)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

그는 2014년 구인두암 진단을 받았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사운드트랙으로 지난해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그래미 상 후보에 오르며 재기했다. 지난해 외신 인터뷰에서 죽기 전 완벽한 걸작을 남기는 게 꿈이고 그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발표한 8년 만의 새 정규앨범 ‘async(비동시성·非同時性)’에 해외 평단의 극찬이 쏟아진다.

한국 매체와 사카모토의 만남은 5년 만이다. 동아일보와 독점 서면 인터뷰로 진행됐다. 한일 문제에 대한 질문에 그는 “양국이 국경을 없애고 정치적·경제적 자유구역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신작 ‘async’는 존재하지 않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1932∼1986) 영화를 위한 사운드트랙이라고 들었다. 음반을 관통하는 주제나 서사가 있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주제나 스토리는 없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와 음악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늘어놓은 앨범이다.”

―‘마지막 황제’(1987년·중국 신해혁명), ‘어머니와 살면’(2015년·나가사키 핵 투하) 등 동아시아 근대사를 다룬 작품에 많이 참여했다. 한일 관계가 군 위안부 등의 문제로 여전히 좋지 않다. 이에 대한 생각은….

“2000년 즈음부터 난 일본과 한국이 작은 유럽연합(EU)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U처럼 국경도 여권 검사도 없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정치적·경제적 자유구역이 되길 바랐다. 이웃끼리 반목하는 인간 종족의 타고난 습성을 이성으로 극복해야만 세상이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사 관련 작품에도 참여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신작 첫 곡 ‘andata’는 장송곡처럼 비장하며 선율이 아름다운데 노이즈를 삽입한 것이 특이하다.

“교회가 바다에 집어삼켜지는 광경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앨범 녹음에 동일본 대지진 때 망가진 피아노도 사용했다던데….

“미야기현의 고등학교에 있던 피아노다. 쓰나미에 잠겨 수리를 해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율은 엉망이었고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도 많았지만, 어떤 의미로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자연에 의한 조율’이라고. 인간이 억지로 조율한 것을, 자연이 커다란 힘으로 다시 돌려놓은 것이라고. 인간 문명 측에 있는 내 음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건강은 어떤가. 투병 후 달라진 점은….

“지금은 괜찮다. 눈물이 많아졌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함께 연기한 사카모토 류이치와 데이비드 보위(오른쪽). 구글 이미지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함께 연기한 사카모토 류이치와 데이비드 보위(오른쪽). 구글 이미지

 
―지난해 별세한 데이비드 보위와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년)에 함께 출연했는데….

“촬영을 남태평양의 작은 섬(라로통가)에서 진행했기에 취재진도 없었고, 그래선지 그는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도심에서 몇 번 만났을 때의 그와는 달랐다. 촬영이 끝나고 수영장 가의 바에 모여 술을 마실 때다. 데이비드가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기 시작했고 나는 옆에 있던 싸구려 드럼에 앉아 반주를 시작했다. 둘만의 잼 세션. 그는 주로 1950년대 로큰롤을 불렀다. 그렇게 즐거운 적이 없었다.”

―올해와 내년에 계획하는 바와 꿈이 있다면 알려 달라.

“두 개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하고 연말엔 도쿄 ICC 갤러리에서 설치미술 전시를 한다. 현재 내 꿈은 새로운 오페라다. 2019년 상연을 목표로 구상 중이다.”

―아시아 투어나 한국 공연 계획은….

“체력적으로 더 이상 투어나 장시간 콘서트는 힘들 것 같다. 다만, 한국 중국 대만 홍콩은 굉장히 좋아하기에 꼭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먼 훗날 당신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음악이 들렸으면 하나.

“바흐가 좋겠다. 거의 평생 들어왔으니까.”

―마지막으로 한국의 음악 팬들,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내 음악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자. 서로 간의 차이, 문화를 존중해가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사카모토 류이치#안드레이 타르콥스키#async#비동시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