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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페버, 다시 가족 품에 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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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페버, 다시 가족 품에 안기다

조은아기자 , 노지원기자 , 김예윤기자입력 2017-06-03 03:00수정 2018-01-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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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그림자 아이들’ 그 후
18세 흑인 소년 페버 군(오른쪽)이 2일 충북 청주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난 뒤 어머니 조널 씨와 손을 맞잡고 있다. 페버 군은 부모가 불법 체류자라 미등록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구금됐다가 본보 보도와 시민들의 탄원으로 자유를 찾았다. 청주=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아, 이 햇빛!”

50일 만에 느끼는 따사로움이었다. 음침한 외국인보호소에 들어갈 땐 아직 바람이 쌀쌀한 초봄이었지만 담장 밖은 화창한 초여름이었다.

18세 흑인 소년 페버 군이 2일 오전 충북 청주 외국인보호소에서 전격 석방됐다. 페버는 보호소를 나오기 전 엄마가 면회 때 사다 준 새하얀 반팔 티를 처음 꺼내 입었다. 짐이라곤 옷가지뿐인 비닐봉지처럼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면회실에서 연방 시계를 보며 1분을 1년처럼 기다리던 엄마 조널 씨(46)는 아들이 나왔다는 소식에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들의 손을 말없이 잡자 소년은 하얀 이를 시원하게 드러내며 씩 웃었다.

“엄마, 내가 정말 나왔어.”

미등록(불법 체류) 청소년이란 이유로 구금됐던 페버는 청주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갑자기 구금 일시해제 신청을 받아들여 풀려날 수 있었다. 부모의 미등록 신분을 물려받아 ‘미등록 청소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 페버의 사연이 지난달 17일자 본보 보도(A1·8면 ‘그림자 아이들’)로 알려지자 시민 1650여 명이 지난달 24일 “페버를 풀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한국에서 태어나 착실하게 성장한 미성년자를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가두고 추방하는 건 잔인하다는 목소리였다.

풀려난 페버는 “빨리 법적인 한국인이 돼 군대도 가고 직업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페버를 보호하던 외국인보호소 직원이 떠나는 페버를 향해 외쳤다.

“페버야, 넌 한국 사람이야.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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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버는 자유를 찾았지만 유효 기간은 3개월이다. 그 안에 부모의 나라인 나이지리아의 여권을 받지 못하면 다시 구금되고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 변호인은 강제퇴거 명령 자체를 거둬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한 달 넘게 “검토 중”이라고만 답하고 있다.

페버처럼 구금되는 미등록 청소년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법무부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불법 체류자 보호시설에 구금한 미성년자(만 19세 미만)는 2012년 56명이었지만 지난해 3.5배로(197명) 급증했다.

▼“페버의 눈물 닦아주세요” 1650명 간절한 탄원 통했다▼

5월 17일자 A8면.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같은 방 사람들이 제가 자다가 죽는 줄 알았대요. 천식 때문에 숨을 제대로 못 쉬었거든요.”

18세 흑인 미등록(불법 체류) 청소년 페버 군은 구금 50일 만인 2일 충북 청주시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난 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간의 고통을 털어놨다. 감옥 같은 보호소의 공기가 탁해 천식이 심해져 숨쉬기가 괴로웠다. 먹던 약이 떨어지면 덜컥 겁이 났다. 의사가 방문할 날만 기다리다 호흡장애로 죽는 건 아닐까 싶었다. 어느덧 같은 방 동료 25명 중 세 번째로 오래 묵은 장기 구금자가 됐다. 불안은 우울로 변해 갔다. 페버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본보 취재 결과 페버처럼 불법 체류자란 이유로 구금 고통에 시달리는 ‘그림자 아이들’이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통계에 구금 처분을 받은 미성년자로 집계되지 않지만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부모와 함께 구금된 아이들을 합하면 증가율이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불법 체류자라도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구금하지 않는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는 흐름이다. 아이들은 구금 중 생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으로 풀려난 뒤에도 성장에 지장을 받고 있어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젖먹이까지 엄마와 함께 구금

지난해 약 3주간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시설에 구금됐던 미등록 이주민 가족. 당시 아이들은 각각 1세, 4세였다. 공익법센터 어필 제공

페버보다 훨씬 어린 아동들도 구금 피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이베리아계 에머슨(가명·5) 군과 에런(가명·2) 군은 지난해 3월 유모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지하철역 개찰구를 들어서다 역무원의 제지를 받았다. 무임승차를 한 것으로 오해받아 경찰에 넘겨졌고 미등록자임이 발각돼 보호소에 갇히고 말았다.

영문도 모른 채 감옥 같은 보호소에 갇힌 아이들은 쇠창살을 잡아 흔들고 옷을 쥐어뜯었다. 대소변을 잘 가리던 에머슨은 갑자기 속옷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뛰어놀길 좋아하던 아이는 가끔 보호소 운동장에 나갈 수 있었지만 30분을 채우면 다시 보호소로 끌려와야 했다. 이들은 약 3주 만에 풀려나 정기적으로 당국에 구금 해제 허가를 받으며 거주하고 있다. 두 아이는 풀려난 뒤에도 대인기피증에 수면장애를 앓았다. 실제 구금 아동이 겪는 정신적 충격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난민지원단체 예수회난민서비스(JRS)는 구금이 육체 질환은 물론이고 정신 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아이들이 14세 미만이어서 인도적으로 구금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엄마가 함께 있길 원해서 같이 있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모유를 줘야 하는 엄마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월드비전과 함께 미등록 이주아동 구금 금지 캠페인을 벌이는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결국 3주 뒤 풀려난 걸 보면 처음부터 구금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성인 불법 체류자는 자유로운 곳에서 살며 정기적으로 감독을 받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 홀로 구금’ 아동 오히려 늘어

2일 충북 청주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난 18세 미등록 청소년 페버 군(앞)이 보호소 앞에서 엄마 조널 씨와 부둥켜안고 그간 가슴에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주=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012년 당시 18세였던 몽골 출신 A 군은 7세 때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와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았다. 어느 날 친구들의 다툼에 휘말려 갑자기 경찰에 끌려갔다가 비자가 만료된 미등록자임이 드러났다. A 군은 부모 없이 보호소에 낯선 성인들과 함께 갇혔다. 5일 뒤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부모를 만날 수도 없었다. 홀로 비행기를 탄 A 군은 기억 속 까마득한 몽골로 내던져지는 느낌이었다. A 군의 ‘나 홀로 추방’ 소식을 접한 인권단체들이 나서 A 군의 비자 취득을 도왔고 A 군은 유학비자를 받아 한국의 부모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A 군을 돕던 한 이주민단체 관계자는 “아이는 미성년자였지만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수갑을 차고 빵만 먹으며 버텼다. 홀로 어찌 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A 군의 소식이 사회적 파장을 낳은 뒤 인권단체들은 비슷한 피해를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정부도 바삐 움직였다. 5년이 지난 지금 A 군 같은 아이들은 줄었을까. 실상은 정반대였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포 및 제주 공항에서 추방을 위해 부모 없이 대기하는 아이들은 2014년 29명에서 지난해(1∼8월) 68명으로 오히려 훨씬 늘었다.

부모 잃은 미등록 아동이 머물 곳을 마련해야


본보 보도로 알려진 미등록 유기 신생아는 우려대로 위탁시설을 전전하는 유랑아가 됐다. 올해 1월 서울 영등포구에서 발견된 아기(생후 5개월)는 불법 체류자 엄마가 양육을 거부한 채 중국으로 추방되며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서울의 한 복지센터가 9개월간 보호할 예정이지만 그 후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 위탁시설은 합법 아동에 대해서만 정부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예산상 미등록 아이를 받기 힘든 처지다.

법무부 관계자는 “어린 아동들을 구금하지 않고 위탁시설에 맡기려고 해도 시설에선 미등록 아동을 입소시킬 규정이 없고 예산도 부족하다며 난처해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등록 아동 구금을 막기 위해 아동 보호를 위한 규정과 예산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모에게 학대받은 미등록 아동은 부모와 함께 구금하지 않고 위탁시설에서 특별히 관리해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의 고지운 변호사는 “캐나다에선 학대받은 미등록 아동을 별도 시설에서 관리하거나 추방이 필요할 경우 부모의 국가에 있는 아동보호시설에 제대로 인계한다”고 소개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보호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금태섭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경기 화성, 충북 청주, 전남 여수의 보호소 3곳 중 2곳에서는 학용품, 기저귀, 분유 정도만 지급됐다. 아동 교육 프로그램이 실시된 기록은 전무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을 지낸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인권 문제가 그간 방치된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신속히 미등록 이주아동의 출생신고를 허용하고 구금을 금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노지원·김예윤 기자
#페버#미등록청소년#불법 체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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